거울에 비친 고려(高麗) 창업(創業)의 예언(豫言)
때는 918년 3월, 하루는 도성(都城)에서 장사를 하는 왕창근 이라는 자가 저잣거리에서 한 노인을 보았는데 꾀죄죄한 행색과는 달리 노인에게서는 알 수 없는 위엄(威嚴)이 느껴졌다.
노인은 한손에 도마를 , 다른 손에는 오래되어 날은 거울을 들고 있었는데 왕창근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그 거울이었다.
왕창근은 곧 노인에게로 가 흥정을 벌였고 결국 쌀 두말과 거울을 맞바꾸었다.
집으로 돌아온 왕창근이 자신의 방에 거울을 걸어놓고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창문을 통해 햇빛이 거울에 비치자 거울에 적혀있던 글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上帝隆子於辰馬/ 상제융자어진마
先操鷄後搏鴨/ 선조계후박압
於巳年中二龍見/ 어사연중이룡견
一則藏身靑水中/ 일칙장신청수중
一則顯形黑金東/ 일칙현형흔금동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창근이 이웃에 사는 선비에게 거울 속 글귀를 보여 주었다.
그 선비는 아마도 귀하 보물인 것 같으니 왕에게 보이면 좋아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하여 왕창근은 거울과 그 속에 적힌 글귀를 따로 종이에 적어 궁예에게 가져갔다.
궁예(弓裔)는 왕창근이 바친 글귀를 보고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거울의 본래 임자가 누구더냐?” 궁예의 물음에 왕창근은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왕창근의 말을 들은 궁예는 아무래도 그 노인이 수상쩍어 왕창근에게 노인을 데리고 다시 입궐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날부터 왕창근은 노인을 처음만난 저잣거리를 돌며 사람들에게 노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그 노인에 대해 아는 자가 없었다.
그러기를 보름이 지났을 무렵 왕창근이 저작거리 한족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동냥아치에게서 노인의 행적을 듣게 되었다.
노인은 왕창근에게서 받은 쌀을 동냥아치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들이 뉘시냐고 묻자, 발삽사의 여래불이 보내서왔다. 하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왕창근이 그 즉시 발삽사로 찾아갔으나 그 노인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절 입구에 놓인 조각상의 형상이 한소에 거울을 들고 있고 또 한손에 도마를 들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전날의 그 노인이었다.
왕창근이 즉시 궁예(弓裔)를 알현(謁見)하고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그대로 아뢰었다.
궁예는 비밀리에 송사홍, 백탁, 허원 등 내 노라 하는 학자들을 내전으로 불러 그 글귀를 해석하도록 명하였다.
글귀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세 사람은 서로 번갈아 읽어 내려가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송사홍 이었다.
“큰일이구려, ‘上帝隆子於辰馬/ 상제융자어진마’라 함은 하늘의 황제께서 그 아들을 진한(辰韓)과 마한(馬韓) 땅에 내려 보냈다는 뜻이고, ‘先操鷄後搏鴨/ 선조계후박압’은 먼저 닭을 잡고 나중에 오리를 친다는 뜻으로 예서 닭은 신라(新羅)요, 오리는 고려(高麗)를 이르는 것으로, 먼저 신라를 얻고 나중에 고려가지 차지 한다는 말이 아니오?”
백탁이 이어 해석해 내려갔다.
“세 번째 글귀는‘於巳年中二龍見/ 어사연중이룡견’이니 사년(巳年)에 두 마리의 용(龍)이 나타나니, ‘一則藏身靑水中/ 일칙장신청수중, 一則顯形黑金東/ 일칙현형흔금동’이라 함은 그 중 한 마리는 푸른 나무속에 감추고, 다른 하나는 흑금(黑金)의 동쪽에 형상을 나타내리라...”
백탁의 표정이 점차 굳어져 말끝을 흐리자 허원이 뒤를 이었다.
“푸른 나무는 소나무를 가르키니, 송악(松岳)을 일컬음이요, 흑금(黑金)은 검은 금(金) 즉 철(鐵)을 이르는 것으로 이는 이곳 철원(鐵原)이 아니겠소?”
송사홍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어쩔 것이오? 이 글귀대로라면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은 지금의 폐하가 아닌 게 분명하오.” 그 말은 바로 왕건(王建)이 왕(王)이 될 것이라는 소리였다.
“王 대인을 이대로 폐하의 손에 죽게 할 순 없소. 우리가 적당히 둘러대어 이 이을 무마시키고 넘어 갑시다.”
허원의 말에 백탁도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일에 대해서는 함구(緘口)하기로 맹세하고 궁예(弓裔)에게는 장차 신라(新羅)를 치고 압록강(鴨綠江) 전역(全域)을 찾지 할 것이라고만 보고했다.
궁예(弓裔)는 기쁨에 들떠 이 모두가 자신이 살아있는 미륵불(彌勒佛)이기 때문이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을 늘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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