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初心을 지킨다면

마당쇠행정사 2013. 8. 24. 13:40

初心을 지킨다면

 

流水喧如怒(유수훤여노) / 흐르는 물은 노한 듯 시끄럽고

高山嘿似嗔(고산묵사진) / 높은 산은 화난 듯 말이 없네

兩君今日意(양군금일의) / 저 둘이 오늘 보이는 행태는

嫌我向紅塵(혐아향홍진) / 속세로 가는 내가 싫어서 이리

 

- 이익(李瀷 1681~1763)

<동시도습(東詩蹈襲)> 성호사설(星湖僿說)28

 

고려(高麗) 때의 문사(文士)인 위원개(魏元凱)의 시이다.

고종 때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한림에 이르렀고, 뒤에 출가하여 법명을 충지(沖止)라고 하였다. 시호는 원감(圓鑑)이다.

한 때 중이 되었다가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환속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다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아마도 다시 환속할 때의 심사를 읊은 듯하다.

 

물이나 산이 무슨 감정을 표현하랴.

그들은 평시와 다를 것이 없건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 비춰지는 것이리라.

 

조선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도 벼슬길에 나가면서

 

靜看山水意(정간산수의) / 저 둘이 왜 저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應笑往來頻(응소왕래빈)/ 응당 왕래가 잦다고 비웃는 것이리라.

 

라는 비슷한 시를 썼다가,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으로부터 표절을 했다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심사는 다를 것이 없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산림을 중시하고 벼슬길을 경시해 왔다.

북산(北山)에 은거하며 덕행으로 이름을 얻었던 주옹(周顒)이라는 사람이 황제의 부름으로 나가 벼슬하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북산으로 돌아가려 하였을 때, 그와 동지였던 공치규(孔稚圭)라는 사람이 산()의 뜻에 가탁해서 거절하는 글을 지어 인구에 회자되었을 정도였으니.

물론, ()나라 승려 영철(靈澈)

 

相逢盡道休官去(상봉진도휴관거)/만나는 사람마다 벼슬 버리고 돌아간다 하는데

林下何曾見一人(임하하증견일인)/산림에선 은거하는 사람 하나도 못 보았네

 

라고 한 걸 보면, 그런 마음이 전적으로 진심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어떤 계기로, 어떤 목적으로 벼슬하러 갔는가.’일 것이다.

이 시의 저자처럼 부모의 권유 때문에 마지 못 해 벼슬하기도 하고,

 

是處塵勞皆可息(시처진로개가식) / 이곳은 세상 고뇌 모두 잊을 수 있는 데 지만

時淸終未忍辭官(시청종미인사관) / 시대가 맑아 끝내 차마 벼슬을 버리지

못 하겠네

 

라고 노래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처럼 맑은 세상에서 뜻을 펴기 위해 벼슬하기도 할 것이다. 그들이 벼슬하러 간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벼슬길은 역시나 험한 곳이다. 이욕과 영화에 물들어 자칫하면 작게는 자신과 고을을 망치고, 크게는 나라를 망칠 수 있다. 초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옛 사람들이 국화나 송백, 송죽의 절개를 높이 치는 것은 험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벼슬한 사람이 초심을 잃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면, 그리고 때가 되어 미련 없이 벼슬을 내놓고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문제될 것이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