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관한 한 사실 김일성이 김대중보다 햇볕정책의 원조였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한마디로 북미양자회담을 하라는 말로, 한반도의 운명을 묵미양자회담으로 결정하고 통미봉남하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런데, 그런 주장의 원조는 바로 김일성이었다. 위 뉴스 동영상에서는 우리는 김대중의 옛 부하 문세광이 1974년 광복절 육영수 여사를 암살하였을 무렵 김일성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음을 본다. 김일성이 1980년 5월 20일경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키면서 남침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은 그해 4월 김일성이 루마니아로 가기 전에
중 국을 방문하여 남한에서 민중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남침할 것이라는 계획을 보고하고 동의를 구했기 때문에 알려졌다. 당시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과의 외교 정상화를 원하던 중국은 제2의 한국전쟁으로 다시 미국과 충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즉시 이 사실을 일본과 미국 정부에 통보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동영상 뉴스는 1974년 8월에도 김일성이 루마니아를 방문하였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1974년 8월 김대중 수하의 암살범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다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지 불과 12일만에 김일성은 루마니아의 차후세스크 대통령의 도움으로 미국 포드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냈다. 김일성이 루마니아로 여행하는 시간과 루마니아로부터 미국으로 특사가 달려가서 포드 대통령을 알현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5년 후의 광주사태 때처럼 김일성이 미리 루마니아로 갔었다는 것이 추정되며, 이는 조총련 소속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시사한다. 그런데, 김일성의 특사가 포드 대통령에게 전한 메시지는 놀랍게도 요즘말로 햇볕정책이지 아니한가!
포드 대통령은 1975년 3월 월남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을 때 어물쩡하다가 월남을 공산주의자들 손에 넘겨준 바로 그 대통령이었다. 무엇이 월맹의 작전이었던가? 바로 햇볕정책이었다. 월남과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절대로 남침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그러나 표면상의 그런 햇볕정책과 달리 월남에서 민중무장봉기를 일으키는 방법으로 침략하였다. 그리고, 월남 중부지방에서 좌익이 민중무장봉기를 일으켰을 때 포드 대통령은 월남의 운명은 월남 국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겠다며 파병하지 않았다. 한국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김잃성은 인혁당과 남민전 등을 동원하여 언제든 남한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땅굴을 파는 두더지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1974년 11월 23일자의 위의 대한뉴스 동영상은 휴전선에서 첫번째 남침 땅굴이 발견되었음을 보여준다.
1975년 봄 월맹이 월남 중부지방에서 시민군을 동원하여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시민군으로 위장하고 시민군 틈에 섞여 사이공을 향해 돌격해 오고 있었을 때 월남의 좌익언론은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군이 오고 있다고 방송하였다. 1970년대에 베트남 공산주의 세력의 도시 게릴라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국가를 전복시키려 했었던 인혁당이나 남민전 등의 간부들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실로 그 상황이 패망 직전의 지유월남과 닮은꼴이 아닌가?
최근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은 박노해 시인도 광주사태 훨씬 이전에 무장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증언하거니와 위의 1975년 3월 29일자 대한뉴스 동영상은 그럼 무장봉기 음모의 배후가 바로 김일성의 지시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광주사태는 무장봉기였다. 그것은 베트남 공산주의자들과 쿠바의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했던 도시 게릴라 방법을 그대로 모방한 무장봉기였다. 어떻게 시민이 감히 총기무장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위의 뉴스 동영상에서 실제로 땅굴을 파고 자유자재로 남한과 북한을 오갔었던 탈북군인은 땅굴을 판 목적 중 두번째 목적이 남한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특수부대를 게릴라로 보내 3일만에 남한 전체를 완전 정복하기 위함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그의 이 증언은 1980년 4월 김일성이 중국에 보고했던 남침전략과 그대로 일치하는 증언이다.
김일성이 김대중의 똘마니 문세광을 시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1975년 8월 그는 미국 포드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 햇볕정책 사인을 보냈다. 월맹이 월남과 맺었던 평화조약과 똑같은 평화조약을 맺겠다는 제스추어를 썼다. 그러나 바로 그때 그는 땅굴을 파는 두더지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일성의 작전은 무력남침이었다. 그리고 땅굴을 판 이유는 남한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날 때 특수부대를 보내어 3일만에 남한을 완전 점령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여기에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한 것을 지켜본 한국의 법관들이 인혁당 사건 주동자들을 재판을 연기해서는 안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과 5년만에 김일성은 광주사태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행히 전두환 장군이 1978년 1사단장 시절 제3의 땅굴을 발견해 내셨기에 우리가 그 위기를 모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자, 김대중에게 무엇이 햇볕정책인지 물어보자. 북한군의 두더지 땅굴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게 막으면 햇볕정책인가?
☞ 문근영 외조부 류낙진의 통혁당과 김대중의 민중봉기
5.18광주폭동 진압책임자는 호남 군인 정웅이었다
문근영의 가족사에 얽힌 김대중 그룹의 정체성
5.18불순세력이 이분을 살해한 거였어?
김대중과 김일성의 거래관계에 대한 증언들
'나의 창으로 보이는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그 옛날 힘들었던 시절 위대하신 우리들의 어머니 (0) | 2009.07.03 |
|---|---|
| [스크랩] 고부군수 조병갑이 딸년 조기숙에게 선배교수가 본낸글(펌) (0) | 2009.07.02 |
| [스크랩] 연평해전 제7주기 추모제 (0) | 2009.06.30 |
| 그 유명한 패륜아 동영상 (0) | 2009.06.27 |
| [스크랩] 그 유명한 폐륜아 정체 밝혀지다. (0) | 2009.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