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으로 보이는 것들

[스크랩] 노무현의 아버지 노판석의 정체

마당쇠행정사 2009. 11. 9. 18:25

노무현의 아버지 노판석의 정체

2006/07/08 16:19 추천 0       13
http://blog.chosun.com/audrudwltn/1250735

 

 

 

     노무현의 아버지 노판석의 정체

 

 

아래 글은

우리 회원님의 제보로 인터넷에서 뽑은 글입니다. 대형 포털사이트마다 노판석을 검색어로 치면 수 없이 많은 글들이 뜨고 있읍니다. 인터넷을 하시는 분들은 쉽게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하시지 않는 회원님들을 위해 여기에 옮겨 드립니다.

 

 

                       아            래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은 6.25 당시 인민군의 앞잡이 역할을 했었습니다. 노무현의 고향 전라남도 강진(1953년 5살 때까지 그 곳서 살았음)에서 약 20~30명 가량의 사람들을 무고하게 살해를 했지요. 이후 노판석은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인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됩니다.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가 철찬지 원수처럼 여겨졌을 겁니다.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의 조부, 즉 노판석의 부친이 일제시대 때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 때 노무현의 조부가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해방이 되자 동네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괄시와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큰 앙심을 갖고 있다가 6.25가 터지고 나서 인민군이 전남 강진을 점령하자,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철저한 앙갚음을 하게 됩니다.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노판석은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절에도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지리산에서 가까운 남원부근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지 않았겠나 하는 큰 의혹이 듭니다. 왜냐하면 당시 지리산 빨치산들에게 자발적으로 식량과 물품을 대줄 민간인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지요. 1953년 들어서 국군이 북한군을 격퇴하고 남한 전역에 치안과 질서를 확립해 나가자 노판석은 자기 고향에 돌아와서 당시 5살 되던 노무현과 노건평을 데리고 야밤에 도망을 갑니다.,왜냐하면 고향에 그대로 눌러   있다간 동네 사람들에게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한 것이지요.

 

그래서

야간에 목포항(목포 바로 옆이 영광 그리고 그 바로 옆이 강진입니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고 도주를 하게 됩니다.(자기네 동네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배편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족을 데리고 부산항에 도착한 노판석은 산골 오지인 경남진영으로 도망을 갑니다.그리고 그 곳서 호적을 새로 만들지요(당시에는 전랒 직후였으므로 호적을 새로 만들기가 아주 쉬웠읍니다) 그리곤 다시 김해로 도주를 합니다.(김해는 진영 바로 옆에 있읍니다)  이후부터 노무현네 집안은 경상도 출신 행세를 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경남  김해에서 역시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던 권오석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권오석은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로서 지역주민 11명을 살해한 경력의 소유자 입니다. 이후 노무현은 고시를 패스, 판사직을 채 1년도 못되게 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됩니다. 이 때 노무현을 크게 도와준 이가 바로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김광일 변호사 입니다. 김광일 변호사는 수습 변호사로 자기 사무실에 온 노무현에게 돈까지 빌려부면서 노무현의 변호사 개업을 도와 줍니다. 이 때 빌린 돈을 노무현은 돈 버는데 수완이 좋아서인지 불과 3개월만에  다 갚습니다.

 

김광일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시국사범들에 대한 인권 변론을 하는데,노무현과 문재인을 참여시키기도 합니다. 바로 그 같은 계기가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인권변호사라는 (사실 노무현과 문재인에게는 그들의 행적으로 미뤄 볼 때,인권 변호사라는  직함이 전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호칭이 따라붙게 되는 시작이 된 것이지요

 

김광일

변호사 덕분에 시국변론을 몇번 하던 노무현은 역시 김광일 변호사 덕분에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김영삼의 추천으로 공천을 얻게 되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 됩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국회의원에 당선된지 훨씬 지난  후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 책에 노무현은 'YS로부터 봉투를 많이 받아서 원도 없이 써 봤다'라는 글을 게재합니다.(바로 여기서 노무현이란 인간의 본색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5공청문회가 열립니다. 노무현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 던집니다.(완전 계획적인 행동이었지요). 이 덕분에 호남지역 사람들과 김대중의 눈에 들게 됩니다. 얼마후 민자,민주, 자민의 3당 합당 반대에 나서면서 이를 명분으로 합당을 극력 반대 합니다. 꼬마 민주당에 잠시 머물던 노무현은 김대중 진영에 합류를 하게 됩니다. 이후 김대중과 노무현의 관계는 양부,양자 관계까지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노무현의 정치입문과 김대중과의 관계를 보다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읍니다.즉 김대중과 노무현의 관걔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모종의 관계와 거래가 있지 않았나?'하는 의혹이 생깁니다.

 

김대중과 호남세력을 비롯한 조직 들이 노무현과 그 집안에 대한 과거와 진실을 감춰주고 보호해주는 세력들이 존재했다는 의혹이 매우 큽니다. 이젠 그러한 의혹을 밝혀야 할 때입니다.진실을 감추고 숨겨주고 왜곡시켰던 존재들의 진상을 밝혀야 할 시점이지요.

 

출처:정치행자법제마당  [김미정] 대형 포털사이트에 널려 있는 글임

실린 곳:시국진단 7월호

 

 

**불법 폭력시위를 적극지지 하고 붉은색소들인 민노총 전교적견의 성폭력 사태와 MBC 자사 內 불법장비 매매 비리 그리고 여직원 성추행 사건을 침묵으로 비호하는 좌익 선동방송 MBC는 사회부저리와 부정 불법을 고발하고 남을 지적할 자격이 없는 쓰레기 집단이다. 나라보다 적의 편에서 북괴가 주장하는 대로 북침설이나 확산시키고 아웅산 묘소 폭파.KAL 858기 폭파등을 안기부조작이라는 설을 확산시키는데 앞장서온 빨/갱/이 방송MBC를 영원히 축출하여 나라 기강을 바로 세우자**

출처 : New 박사모(대한민국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글쓴이 : 산울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