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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성욱 "친북좌파의 巨頭 오종렬 실체?"

마당쇠행정사 2010. 8. 1. 12:16

 

 

 

 

김성욱 "친북좌파의 巨頭 오종렬 실체?"
"국보법으로 처단당한 동포가 1백만!?"이라는 오종렬
 
김성욱 정치평론가

오종렬은 누구인가?
 
친북좌파 선봉장 역할을 해 온 오종렬氏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이다. 그것도 전교조 출범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었다.
 
 吳씨는 65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 후 전남고교와 전남여고 교사를 거치며 87년 말부터 전교조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활동에 깊숙이 간여했다. 2000년 8월3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인용해보면, 『전교조 중앙본부가 결성되자 동료교사들에 의해 광주지회장에 추대됐고 특유의 인화력으로 단번에 조합원을 3,000여명까지 늘렸다』고 한다.
 
 2008년 9월 「말」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吳씨는) 전교협 결성 이후 광주를 벗어나 전국을 다니며 토론을 조직하고 교사들을 만나며 「교원노조 결성」을 호소했다. 1989년 2월 전교협은 마지막 대의원대회를 열고 2표 차이로 「교원노조」로 조직을 전환하기로 결의했다』 「말」지 기사대로면, 吳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교조 결성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말이 된다.
 
 吳씨는 89년 전교조 결성 주도 혐의로 해직됐고,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등 친북단체 대표로서 반미운동을 주도해왔다. 해직 중에도 그는 전교조 광주시지부장으로 활동했다. 吳씨는 91년 지방자치의회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광주시 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94년 말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2년8개월 형을 선고받고 만기까지 복역했다.
 
 吳씨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기사를 인용해본다. 吳씨는 김일성 사망 하루 뒤인 94년 7월11일 전국연합 차원에서 이른바 애도성명을 발표한 뒤 언론에 이렇게 인터뷰했었다. 『金 주석이 자주(自主)와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위해 힘써왔던 것을 민족적 관점에서 평가한다...남북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던 정신에 기초하여 자주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국내외 반통일세력의 준동을 막아야 한다』 소련, 중공 등 외세를 끌어들인 남침전쟁을 일으켜 400만 민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백정 김일성을 가리켜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왔다』니?
 
 오종렬 같은 골수 친북좌파 인물이 전교조의 산파(産婆)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전교조가 왜 그토록 편향된 이념을 가지고 활동했는지 추측케 해준다. 대한민국과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으니 반미, 친북, 좌경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왜 친북좌파가 되었나? '한풀이'가 돼버린 反대한민국 활동
 
국내 친북좌파의 거두(巨頭)인 오종렬은 「뼛속 깊은(?)」 운동권 집안이다. 2008년 9월 「말」지는 전교조 창설을 주도하던 당시 吳씨의 고뇌를 이렇게 적었다.
 
 『그는 이 무렵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뼛속 깊이 새겨진 가족사의 아픔이 되살아나면서 자신의 존재로 인해 이제 막 시작하는 전교조에 좌경용공의 색깔이 덧씌워지고 더 심한 탄압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말」지에 나오는 吳씨의 가족사 요지는 이렇다. 「38년생인 오종렬의 부친 오정근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서 해방공간에서 여운형을 따라 건국동맹,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했고, 나주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 농민조합장을 맡았었다. 그의 부친이 몸담던 나주 인민위원회도 탱크를 앞세운 미군에 의해 폐허가 됐고 오정근 선생은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옥고를 치러야 했다.」
 
 부친 오정근에 이어 오종렬의 가계(家系)의 좌익 전력은 3대를 이어갔다. 오종렬의 아들 창규氏는 93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산하 남총련 의장을 지내고 있을 때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생활을 시작하여 7년을 수배자로 보내다가, 98년 3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이후 「박승희 열사 정신계승사업회」에서 활동하다 2006년 5월 민노당 후보로 광주 北구청장에 출마하기도 했었다.
 
 <김일성이 자주와 평화통일에 힘써왔다?>
 
 국내 친북좌파 중 많은 수는 오종렬氏와 같은 「가족력」을 가지고 있다. 건국과 6.25 과정에서 빨치산, 인민군 후예로 겪어 온 상처(傷處)가 치유되지 못한 탓이다. 이들의 육체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정신은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었고 이로 인해 『김일성』에 대한 경의(敬意)의 뜻을 숨기지 않아왔다.
 
 吳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김일성 사망 하루 뒤인 94년 7월11일 전국연합 차원에서 이른바 애도성명을 발표한 뒤 언론에 이렇게 인터뷰했었다. 『金 주석이 자주(自主)와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위해 힘써왔던 것을 민족적 관점에서 평가한다...남북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던 정신에 기초하여 자주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국내외 반통일세력의 준동을 막아야 한다.』
 
 소련, 중공 등 외세를 끌어들인 남침전쟁을 일으켜 400만 민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백정 김일성을 가리켜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왔다』니?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친북좌파의 뿌리 깊은 저주와 원한의 배경을 추측케 해준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대한민국과 화해할 수 없는 역사적 DNA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미군의 소위 6.25양민학살 문제 제기>
 
 吳씨는 2000년 9월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연방제 통일』을 결의하면서 『연방제가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결집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런 이념을 가진 이들에게 주한미군은 필연적으로 철거의 대상이고, 국가보안법은 철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吳씨의 반미투쟁은 실제 집요하고 끈질기게 계속됐다. 그는 △2002년 여중생범대위(11월30일 조직. 대표 : 오종렬, 한상렬, 홍근수, 단병호, 천영세, 문정현), △2004년 탄핵무효범국민행동(3월12일 조직. 대표 : 오종렬, 이수호, 문규현, 박원순, 최열), △2005년 10월 反부시국민행동(상임대표 : 오종렬, 정광훈), 2005년 11월 전용철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문경식, 권영길), △2005년 평택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홍근수, 문정현, 문경식, 이정미), △2005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 오종렬, 정광훈, 문경식)등 대부분의 좌파성향 범대위의 대표로 참가했다. 吳씨는 △전국연합을 계승한 한국진보연대 1기 공동대표 및 △우리민족끼리연방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계승연대),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등의 간부를 맡아왔다.
 
 吳씨가 제기한 반미운동의 주요 이슈는 6.25당시 미군의 이른바 양민학살 문제였다. 그는 2000년 5월10일 베이징에서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위원장 윤기복)과 이른바 「미군의 학살만행 진상규명을 위한 전민족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전민특위)라는 기구를 구성해 『남북한이 학살문제를 공동조사하기』로 결의했다. 여기에는 남한에서 전농, 민노총, 한총련, 범민련 남측본부, 민족화해자주통일운동협의회 등 20여개 단체가 참여했다.
 
 吳씨는 2001년 11월5일 여의도 공원에서 한국전쟁을 전후로 「국군, 경찰, 우익청년단체, 미군 등에 의해 사망한 희생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통합특별법」을 제정하라며 300여명이 참석한 합동위령제를 열기도 했었다. 그는 이날 추도사를 통해 『유족회가 바로 서서 미군의 범죄를 밝혀내야 한다』며 『그 작업에 각계각층의 시민사회단체와 청년학생이 동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닥빨갱이의 인민재판, 20세기 대학살 사건>
 
 오종렬과 같은 인물들이 벌이는 6.25 양민학살 선동은 극단적으로 치우친 선동이다. 북한정권에 대한 이념적 친근성(親近性) 내지 가족사에서 기인하는 「한풀이」 성격이 짙다. 6.25는 북한정권의 기습남침에 대한 대한민국의 정당방위 과정이었다. 양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 중 피아(彼我)식별이 어려운 상황서 빚어진 불가피한 교전행위였다. 『국군, 경찰, 우익청년단체, 미군의 학살로 죽은 민중』 운운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티끌」에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북한정권의 「들보」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외눈박이 시각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6.25 당시 양민학살은 인민군 치하 「바닥빨갱이」로 불리는 빨치산들에 의한 「인민재판」형태로 진행됐다. 빨치산들이 6·25당시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한 양민의 수는 13만. 남경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etto)의 유태인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던 바닥빨갱이들은 대개 총이 없었으므로 죽창이나 도끼, 쇠스랑, 괭이 곤봉 등으로 무장했고 곡괭이와 삽으로 우익인사들을 찔러 죽이는 원시적 학살행위를 자행했다. 전쟁사학자들은 6.25사변 당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13만 양민학살」이 세계적 학살로 기록되는 이유는 피해자 수는 물론 그 잔혹성(殘酷性)에 있다고 지적한다.
 
 경남 남해군에서는 경찰관들을 살해해 배를 갈라 간을 꺼내 씹거나 절명한 경찰관 경찰관의 배에 1척이나 되는 소나무 말뚝을 박기도 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는 반공인사 600여 명이 철사줄로 묶어져 휘발유를 끼얹어 지고 웅덩이에 생매장됐다. 전주형무소에서는 감옥에 있던 우익인사들이 살해된 후 도랑에 던져졌고 도랑이 시체로 가득 차자 우물에 던져졌고 우물이 차자 뒤뜰에 버려졌다. 대전형무소에서는 수감돼 있던 1,742명의 우익인사와 가족들이 모두 학살됐다.
 
 국군과 미군에 의한 학살(虐殺) 운운하는 반한(反韓)선동이 휴전선 이북(以北)이 아닌 이남(以南)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것은 비극이다. 그리고 이 비극의 진앙(震央)엔 「오종렬」과 같은 이들이 있다.

 
 
"점령군이 주둔하는 한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
 
친북좌파 오종렬 「류(類)」의 반미(反美)주의는 맹목적이다. 미국을 한국의 지배자로 인식하는 반미세력은 미국의 모든 것을 트집 잡는다. 吳씨가 선동해 온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미국이 북침(北侵)전쟁을 도모한다는 억지이다.
 
 『봄은 왔는데 부시는 전쟁을 몰고 오고 있다...부시 방한의 목적을 제대로 알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2002년 2월6일 광화문 美대사관, 부시 방한 반대 기자회견)』거나 『우리 민족은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 권리가 있다...이 권리를 빼앗으려는 부시 대통령 방한에 전 민족이 항거해야 할 것(2002년 2월21일 옥인동, 반미집회)』이라는 吳씨의 발언은 이 같은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군이 우리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다?!』>
 
 미국의 북침전쟁 선동은 물론 거짓이다. 김일성은 6.25때 기습남침으로 4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그 아들 김정일은 핵무기까지 개발해 전쟁위협을 높이고 있다. 이른바 「남조선민족해방」을 앞세워 전쟁을 몰고 다닌 것은 정작 북한이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抑止)해 온 한반도 평화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반미세력이 미국을 욕하는 배경, 황당무계한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이유는 하나다. 6.25때 북한이 한반도 적화(赤化)를 이룰 수 있었는데 미국 때문에 실패했다는 한 서린 저주인 것이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은 반미(反美)세력이 지나칠 수 없는 호기였다. 이들은 미군 훈련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두 여중생을 반미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吳씨는 여중생범대위라는 연대체를 조직하여 촛불집회를 이어갔고, 이것은 2002년 말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을 이끌어 낸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吳씨의 발언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군이 우리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다...왜 남의 나라 군대가 내 나라 내 땅에서 범죄를 저지르는데 우리 손으로 다스리지 못하냐...우리가 이제는 치욕의 역사를 끊어내고 우리의 힘으로 미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2002년 6월15일 용산 미군기지 5번 게이트 앞「여중생 죽인 주한미군 규탄 기자회견」)』
 
 ?『이번 사고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미군이 장갑차로 우리 아이들을 깔아 죽인 사건이다. (종묘공원에 나와 있던 노인들을 향해) 어르신들의 손녀딸이 깔려죽었다...내나라 내 땅의 범죄는 우리가 재판권을 행사하도록 어르신들이 도와주십시오(2002년 7월27일 서울 종묘공원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주한미군 규탄 범국민대회)』
 
 ?『살인범을 대한민국 법정에 세우자는 요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범죄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점령군 최고 통수권자 공개사과는 물론 모든 범죄의 뿌리를 단절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요구...내 자식을 죽이고 강산을 깔아뭉개고 상처 내는 점령군 탱크를 반드시 ?아내자(2002년 8월3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부시 사과 촉구 전국동시다발 평화대행진)』
 
 ?『두 여중생 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이제 6.15공동선언을 민중 속에 뿌리내리자...통일운동가끼리 모여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고 민중 속으로, 현장 속으로 들어갈 때 효순이와 미선이의 한이 풀리며 우리는 살 수 있다(2002년 8월15일 8.15 민족통일대회)』

 
 <『맥아더가 한국을 정치·경제 식민지로 전락』>
 
 오종렬의 반미(反美)선동은 거짓, 억지, 궤변으로 점철돼 있다. 황당무계하고 우습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들의 집요한 선동은 2002년 대선 국면, 2004년 탄핵 파동, 2008년 광우병 난동 등 결정적 시기에 대중의 심리를 혼란케 하고 교란시키고 분열시키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吳씨의 주요 반미 발언이다.
 
 ?『점령군에 의해 내 나라 내 땅의 국민이 죽임을 당하는데도 정부는 손톱만큼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엄연히 국가주권이 있는 나라에서 가능한 일이냐. 점령군이 주둔하는 한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이며 우리의 주권은 한낱 쓰레기일 뿐이다(2002년 9월30일 미군 트레일러와 충돌해 숨진 고(故) 박승주씨 장례식장)』
 
 ?『130년 동안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우리의 수많은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동포형제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던 미(美)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여러분들의 손으로 6.15 공동선언 기치 높이 들어 조국반도의 통일이 되기를 염원한다(2004년 1월9일 동국대학교 중강당 「우리민족 대 미국의 대결전(大決戰)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

 
 ?『동지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 마치 땅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땅이 움직이고 있다. 조국이 움직인다. 통일조국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동지들 앞으로 갑시다(2005년 5월15일 광주 송정리 美공군 제1전투비행단, 1만여 시위대의 미군 기지파괴 폭동을 선동하는 발언)』
 
 ?『이 불볕 더위를 뚫고 가마솥 더위를 뚫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자주와 평화의 넋을 일깨우시고 여기에 오신 전쟁피해 유가족 동지 여러분과 문정현 신부 등 평화 유랑단의 광화문 입성을 열렬히 축하한다...이라크파병을 한미동맹을 결정적으로 파탄 낼 절호의 기회로 삼자(2004년 7월31일 밤 광화문 교보문고 앞 촛불집회)』
 
 ?『5.18과 사월혁명을 이어받은 전사들이 민중과 함께, 민중을 앞세워 학살의 현장을 달려가자. 우린 4.19와 5.18,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항쟁의 물결을 이어가야 한다. 땅을 치고 통탄할 5.16군사쿠데타와 침략과 학살의 모든 죄악을 불사르고 4.19와 5.18정신으로 진군, 총진군하자(2005년 4월19일 4.19국립묘지 기념식 발언)』
 
 ?『미국이 이 나라를 정치·경제 식민지로 전락시키도록 토대를 마련한 맥아더가 과연 해방자인가, 이것은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인천공원을 자주독립공원으로 바꾸고 민족의 스승인 김구선생의 동상을 세워야 통일세상이 열릴 것이다(2005년 9월1일 청와대 부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 주장 발언)』
 
 ?『미 제국주의와 초국적 자본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자...자주적인 민주정부(편집자 주 : 공안기관은 이를 용공(容共)정권으로 해석한다)을 수립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학생들이 총진군하자(2005년 12월4일 대학로, 민족농업 사수, 비정규권리보장입법쟁취 범국민대회)』

 
 <韓美FTA를 을사조약에 비교하는 세력들>
 
 반미세력에게 韓美FTA는 치명적 위협일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에 의한 이른바 군사적 점령체제가 경제·문화적 점령체제로 확대-재생산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미세력이 韓美FTA의 핵심의제였던 韓美쇠고기협상을 물고 늘어지고, 온갖 날조와 조작을 동원해 광우병 파동을 일으킨 이유도 여기 있다. 소위 미국의 지배체제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일제식민지배 하에서 독립을 위한 폭력 사용이 역사적으로 정당화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식의 논법이다.
 
 吳씨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韓美FTA는 경제의 통합 수준이 아닌 한미합방 수준』이라며 『당시 정신을 이어 美제국주의에 최후의 결판을 내야 할 것(2006년 10월28일 건국대 대강당 건대항쟁 20주년 기념식)』이라고 선동하는가 하면,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FTA 철회」를 함께 외치며 이렇게 말했다.
 
 『주한미군은 들어올 때부터 점령군(占領軍)이었다...주한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는 본질적 이유는 주한미군이라는 이름아래 실질적으로 점령군(占領軍) 체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韓美FTA를 통해 군사적 점령체제에서 경제·문화적 점령체제로 강화하는 현대식민지체제로 만들고 있다(2007년 4월12일 美대사관 인근 기자회견)』
 
 반미세력은 소위 미국의 군사적, 나아가 경제·문화적 점령체제를 깨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위험을 과장하기 시작했다. 진실(眞實)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지만, 반미세력의 거짓, 조작, 날조된 선동은 대중을 파고들었다. 아래는 집요하게 계속됐던 吳씨의 광우병 선동 중 일부이다.
 
 <『韓美FTA 체결하면 정치생명 완전히 끊을 것?!』>
 
 ?『광우병에 걸린 미국 소 한마리가 한번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백 마리가 된다...지금 막지 못하면 우리 국민의 건강은 물론 축산업이 파멸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국민들과 함께 이를 막아내야 한다(2006년 11월28일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중단 기자회견」)
 
 ?『꼭 1백 년 전 이랬다. 나라 팔아먹은 을사오적들이 꼭 이랬다...(매국노들은 그때도) 일본의 보호 아래 들어가면 안전할 텐데 철딱서니 없는 쇄국주의자들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韓美FTA협상을 체결하면 즉각 전민중적 봉기로 치달을 것이다. 협상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의 품안으로, 역사와 정의의 품안으로 돌아오라(2007년 3월21일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노숙단식농성)』

 
 ?『우리의 목표는 간단명료하다. 당면한 韓美FTA를 끝장내고 반전평화를 실현해 내고 조국의 자주통일로 이뤄나가는 데 총력을 모으는 것이다...민중승리가 최고의 목표이다(2007년 1월9일 한국진보연대(준)출범식 및 2007년 투쟁선포식)』
 
 ?『협상이 타결되기 전에 총력 저지 투쟁하고, 타결되는 순간 무효선언을 선포하고 전민항쟁으로, 동시에 국회사업으로 들어갈 것...정치권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韓美FTA에 찬성하면 정치생명을 완벽하게 끊을 것이다...정부관료, 대통령, 美제국주의까지 타도하기 위해 全민중·全민족적 에너지를 모아낼 것(2007년 3월31일 광화문 기자회견)』
 
 ?『국민 전부가 미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왜 미치고 있습니까? 국정을 맡은 사람들이 미국보다 앞장서서 광우병 쇠고기 안전하다고 하니 미치는 거 아니냐. 앞으로 정부는 촛불문화제를 감시하고, 관계자를 조사할 것이 분명하다 촛불문화제를 대한민국 법으로 못하게 할 수 없다(5월3일 서울 종각 촛불집회)』
 
 ?『정부는 청소년들을 불온한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그들을 뛰쳐나오게 한 것이 누구냐? 청와대가 배후조종한 거 아니냐...오히려 국민이 (미국과 정부 때문에) 떠밀리고 있다. 끌려나오고 있다(2008년 5월8일 정부종합청사 앞 기자회견)』
 
 ?『한국진보연대에 대한 탄압이 이명박 정부의 색깔론을 통한 촛불끄기 음모로 기획되고 있다...광우병 위험을 해결하라는 국민을 방패로 찍고, 군화발로 밟아, 촛불을 끄려는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진보연대에 대한 색깔을 입히고, 진보연대를 배후로 조작하려는 것(2008년 5월30일 영등포 민주노총, 기자회견)』

 
 
"국보법으로 처단당한 동포가 1백만!?"
 
한국진보연대 고문 오종렬은 필사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벌여왔다. 위반 사례도 많다. 1994년 12월30일에는 광주시의회 의원 시절 구속됐었다.
 
 2000년 7월17일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출범 시에는 공동대표로 참가했고 2002년 11월29일 좌파가 결집해 만든 소위 「국가보안법 장례위원회」 구성 시에도 상임공동준비위원장으로 참가했다.
 
 아래는 吳씨의 관련 발언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출처는 통일뉴스, 민중의 소리 등이다. 『56년 간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단 당하고 고문-치사를 겪고 의문사 당한 우리 동포가 1백만 명에 이른다』거나 『죄 없는 우리 국민을 목 매달아 죽이고 총으로 쏴 죽이고 고문해서 죽이고 암매장해서 죽이고, 「빨갱이」로 덧씌워 사회적으로 매장한 게 바로 국가보안법』이라는 발언은 너무 황당무계해 우습기까지 하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정권의 대한민국 체제전복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60년 번영(繁榮)의 기틀인 자유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을 통해 지켜질 수 있었다. 과거 일부 오남용 사례가 있었다 해도 소위 민주화 이후 그 같은 일들은 사라졌다. 현재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본다는 이들은 일반 국민이 아니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북한정권의 대남노선에 동조하는 친북반국가 행위자들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 범죄 집단 한나라당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무덤 속에 파묻겠다』는 주장이나 『이걸 없애고 새나라 새 일꾼들이 일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주장은 吳씨와 같은 이들이 주장해 온 소위 자주적민주정부, 연방통일조국의 모습을 가늠케 해준다.
 
 ?『근본부터 흔들리게 하는 미제국주의가 우리 덜미를 잡고 있어 반미자주로 모여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당면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반미자주노선으로 선회해야 한다(2001년 7월19일 기독교회관 2층,·양심수 석방과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촉구대회)』
 
 ?『국가보안법이 사멸되었음을 선포한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낸 쇠고랑과 족쇄에 묶인 양심수를 전원 석방시키는 투쟁을 전개하려 한다(2002년 12월1일 종묘공원, 국가보안법 장례식)』
 
 ?『한나라당에게 국가보안법은 수구반동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마지막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과 이를 위해 민족의 미래, 국민복리, 조국통일을 유보시킬 수 없다는 점을 설득하고 호소할 것이나 안 된다면 국민이 힘으로 딛고 넘어 설 것이다(2004년 9월6일 안국동 느티나무카페 기자회견)』
 
 ?『이 모든 역사의 찌꺼기를 바둑판 때려 엎듯 갈아엎자(2004년 11월16일 국가보안법폐지 국민농성장 촛불집회)』
 
 ?『56년 간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단 당하고 고문-치사를 겪고 의문사 당한 우리 동포가 1백만 명에 이른다. 우린 이 1백만 명의 하얀 뼛가루 위에 살고 있다...오늘 우리는 민중의 삶을 옥죄이는 올무이자 악의 싹인 국가보안법을 잘라 내 조국강산에 위대한 통일조국의 탑을 쌓는다...국가보안법을 쓰레기통에 담아 폐차장에 버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당당히 세워나가자(2004년 12월1일 여의도 국회 앞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63인 삭발식)』
 
 ?『이는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결사의 행군이다...국가보안법 범죄집단 한나라당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무덤 속에 파묻고 열리우리당이 정신 차리도록 두들겨 패겠다(2004년 12월22일 여의도공원 농성장, 소위 비상시국회의 기자회견)』
 
 ?『죄 없는 우리 국민을 목 매달아 죽이고 총으로 쏴 죽이고 고문해서 죽이고 암매장해서 죽이고, 「빨갱이」로 덧씌워 사회적으로 매장한 게 바로 국가보안법이다...이걸 없애고 새나라 새 일꾼들이 일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2005년 1월24일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2월 투쟁선포 기자회견)』
 
 ?『어떤 놈들은 당의 명운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고 여당은 슬슬 꼬리를 내리고 있다...과거 광주시민들 학살에 피 묻은 손으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피 맛을 잊지 못해 고문·인권학살의 시대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2005년 2월20일 대학로 소위 민주개혁과 수구청산을 위한 범국민대행진집회)』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물에 빠지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을 것>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100만이 넘는데 앞으로 어둠의 역사가 지속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36일째 국가보안법 올무에 묶인 채 37일째 어둠과 맞서고 있는 평화작가 이시우의 석방에 동참해 달라...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물에 빠지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을 것(2007년 5월26일 서울역 광장, .이시우 석방 촉구 결의대회)』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법·제도의 핵심이 국가보안법이라고 해서 이제 우리가 두 손 놓고 구경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국가보안법으로 기득권을 챙기고 있는 자들은 국가보안법을 보듬고 악랄한 꾀를 도모할 것...국가보안법 1백만 피해자, 1천만 가족들을 똘똘 뭉치는 핵심세력이 되자(2007년 10월13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2007 남북정상선언 실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선포대회」)』

 
 
6.15는 자신들 노선과 같다는 친북단체 대표 오종렬

김정일조차 더 이상 적화통일하자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는다. 대신 6.15선언을 실천하자고 한다. 친북좌파 거두(巨頭) 오종렬 역시 모든 선동의 귀결은 6.15선언 실천으로 귀결된다. 吳씨는 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면서 『반민족 행위자들의 후손, 반민족 매국노들의 동조자들을 싸그리 청산하자』고 말해왔다. 친북좌파가 주장하는 6.15의 실체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吳씨는 2001년 12월1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6.15선언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에 대한 오해를 풀어줬다고 말했다. 당시 吳씨가 대표로 있던 전국연합은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폐지-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대남노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특히 2001년 9월 충북 괴산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연방제통일은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결집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던 단체이다. 吳씨는 6.15선언이 골수 친북단체인 전국연합의 노선과 같다며 이렇게 인터뷰했었다.
 
 『6.15공동선언으로 인해 전국연합은 다음과 같은 영향을 받고 또 오해도 풀렸습니다. 먼저, 6.15선언의 첫째 항인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은 우리 전국연합의 ·자주· 강령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또한 둘째 항인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은 그간 전국연합의 고민을 해소시켜 주었죠. 즉 전국연합은 ·연방제통일·을 주장했는데 그래서 이것이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 오해도 사고 매도도 됐는데 6.15합의로 말끔히 해소가 된 거죠. 따라서 이제 우리는 전국연합의 통일방안을 더욱 ·군중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 거죠』
 
 사실상 사회주의 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단체의 대표의 해설은 명료했다. 「6.15선언은 자신들의 노선과 같다」는 요지이다. 吳씨의 6.15 관련 발언이 너무 많아 언급의 실익이 적어 보이지만, 일부는 인용해 보기로 한다. 출처는 통일뉴스, 민중의 소리 등이다.
 
 ?『자주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남녀의 차이, 지역의 다름, 재산의 유무, 지식의 다소, 종교와 정치적 신념의 상이함 등 그 모든 것은 민족이라는, 우리 모두의 가장 거대한 이름 앞에서 다 사라진다. 6.15선언을 따라 함께 나아가자(2001년 6월16일 여의도 중앙공원, 6.15 남북공동선언 1주년 기념식)』
 
 ?『모진 탄압과 고난 속에 범민련을 지키기 위해 그 동안 고생 많이 했다...7.4 공동성명에 이어 6.15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 민족통일대전선인 범민련이 대중조직과 함께 실천해 나갈 것을 믿는다(2001년 11월26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11주년 기념식)』
 
 ?『부시가 아무리 6.15공동선언을 반대하고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겠다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민중의 염원을 짓밟으려 해도 어림도 없다...지금 당장 눈앞의 4.15총선에서 반민족 행위자들의 후손, 반민족 매국노들의 동조자들을 싸그리 청산하자(2004년 3월1일 탑골공원,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의 변화는 6.15 공동선언 이후 8년 동안 이뤄낸 민족적 결실을 존중하고 이 토대 위에서 민족적 단합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이뤄질 수 있다. 6.15 공동선언과 그 이행방안을 담고 있는 10.4 공동선언을 지키고 실천해 나가기 위해 더욱 앞장서야 한다(2008년 6월16일 금강산, 6.15민족통일대회 폐막식 연설)』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근본적인 부정에서 비롯된 것...전쟁과 영구분단을 초래하는 외세공조를 중단하고, 평화통일과 번영을 가져 오는 민족공조로 돌아서라(2009년 6월15일 서울 향린교회, 「민주주의 수호, 남북관계 복원,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한 자주통일 원로 시국선언문」)』

 
 吳씨에게 북한의 핵무장은 정당한 것일 수밖에 없다. 2005년 2월25일 오전 프레스센터 7층에서 「한반도 평화 실현과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민 사회단체 선언」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을 인용해보자.
 
 『북한이 핵을 가지게 된 요인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全세계에서 최초로 핵을 만들고 한반도에 핵투하 계획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최후의 자위 수단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 일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한반도의 평화는 깨지게 마련이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핵 프로그램과 핵투하 계획도 폐기돼야 한다. 핵무장과 핵 물리력을 앞세워 북한에 대해 굴복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적 행태가 없어지도록 전민중이 단결해야 한다』
 

 [김성욱 정치평론가: http://www.chogabje.com/]

 

 

 

 

 

 

 

 

 

 

 

 

 

 

 

 

 

 

 

 

 

출처 : 아름다운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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