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영삼이 김대중의 병문안을 갔다.
두 사람이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87년 김대중이 통일민주당을 깨고 나간 이후 20년만이다.
김영삼은 퇴임 후 끊임 없이 김대중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잘 모르는 사람은 IMF를 초래하여 완전히 실패한 전직 대통령이 악담을 퍼 붓는 어이 없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이 그러는 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87년 대선 당시의 김대중의 미친 짓거리 때문이다.
71년 대선당시를 돌이켜 보면, 김영삼은 당시 당내 1차 경선에서 김대중에게 승리했지만 2차 결선투표에서 이철승과 연합한 김대중에 패하자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 경선은 민주주의의 승리입니다"라며 쿨하게 승리를 축하해 주었었다.
그러나 87년 상황이 달라지자 김대중은 너무나도 판이하게 행동했다.
당시 당 총재였던 김영삼에 비해 열세였던 김대중은 나이를 이유로 김영삼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다 김영삼이 이를 거절하자 경선을 거부하고 당을 깨고 나가는 희대의 개만도 못한 짓을 벌이고 말았다.
소위 그 무슨 4자필승론이란 걸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이때이다. 야당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보다 오히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 이렇게 4명이 나오는 것이 TK는 노태우, PK는 김영삼, 충청은 김종필 후보가 갈라 먹게 되므로 자기는 수도권을 비롯해서 결집된 호남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기에 유리하다는 논리였다.
영남의 분열은 나름 지금도 통하는 선거전략 아니겠는가. 그러나 수도권은 그에게 기대 이하의 표만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김대중은 김영삼에 이어 3등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김대중은 여러차례 당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말을 했지만 이 일로 김영삼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김대중이 당을 깨고 나간 것은 정말 이인제보다 못한, 선거와 민주주의 원칙의 기본조차 짓밟은 천하에 한심한 작태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영호남 지역갈등과 몰표가 발생하는 후유증을 낳았다는 것이다. 87년 대선은 선거기간 내내 광주에서 김영삼에게 집단 돌팔매가 날아드는 등 그야말로 지역대결의 완전한 결정판이었으며, 이후 시작된 고질적인 지역몰표현상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영호남 지역몰표가 71년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선 때부터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다. 이점은 여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blog.daum.net/ikdominia/11
둘째, IMF를 불러온 미친 분탕질 탓이다.
IMF 사태가 오기 10개월 전인 97년 1월 10일 경, 대한민국 국회.
96년 중순 경, 당시 김영삼의 집권당은 금융시장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소위 "금융개혁입법"을 입안하기 위해 무진 노력을 했다. 그러나 정계은퇴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돌아온 김대중은 집권욕에만 눈이 멀어 물리력을 동원하여 법안통과를 번번히 막았다.
해를 넘겨 김영삼은 97년 1월 10일 경 다시 "금융개혁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통과를 시도한다. 그러나 김대중은 새정치 국민회의 의원과 당직자 그리고 당원을 총 동원해 국회 본회의장의 단상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금융개혁입법" 등의 국회 통과를 결사적으로 막았다.
당시 김대중이 내 건 명분은 오직 이거였다.
여당이 노동자들 다 죽인다.
여당이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탄압하려 하고 있으며 오직 대기업과 재벌만 살찌우는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
전 국민이 나서 우리 노동자들을 지켜야 한다.
이후에도 김대중 일파는 IMF가 올때까지 번번히 국회를 공전시킴과 동시에 노사분규 선동, 대중선동을 일삼으며 입법을 막았다. 결국, 김영삼 정권의 한국은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게 되고 그 해 11월 3일, 비운의 IMF 사태를 맞게 된다.
그런데 김대중이 집권하자마자 한 일이 뭔지 아는가.
눈물을 질질짜면서 "여러분 일단 살고 봐야 합니다"라고 나불거리며 시행한 정책이 뭔지 아는가.
그는 김영삼이 통과시키려 했던 구조조정관련 법안과 정리해고 정책을 완전히 똑같이 시행했다. 그가 시행한 노동관련 입법은 김영삼 정부가 통과시키려 했던 법안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 오히려 더욱 더 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어야 했고 엄청난 수의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폐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IMF는 극복될 수 있었다.
김대중이 금융개혁입법과 노동관련법 개정을 막지 않았더라면 결코 오지 않았을 IMF였다. 그러나 김대중은 당선 되자마자 IMF의 모든 책임을 김영삼에게 돌렸다.
다음은 김영삼이 2009년 9월 월간중앙 객원기자이자 작가인 이호와 대담한 내용이다.
김영삼은 IMF나 불러 온 대통령 정도로나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790449
IMF가 오게 된 종국적인 책임은 결국 그에게 있겠지만 김영삼이 87년 단일화 실패를 가장 섭섭한 일로 기억하면서 IMF에 대해 한 이 말은 정확한 팩트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대중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그냥 무시하더라도 국민 여론이 김영삼 편이 되지 않으리란 계산도 있었지만 솔직히 좀 더 정확한 이유는 이에 대해 김대중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IMF는 김대중의 저 금융개혁법과 노동관련법 결사반대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 일이었다.
김대중은 김영삼에게 욕처먹어 심히 싸다.
김대중의 너무나 잘못된 행태가 없었더라면 영호남 지역몰표도, IMF도 애시당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근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런지 김영삼도 마음 풀고 병문안 가 보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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