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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옥’이란 하드웨어에 ‘정’과 ‘풍류’라는 콘테츠를 넣은 명품관광상품을 개발하긴 했는데,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라 참고할 만한 자료도, 도움 받을 만한 곳도 없었다. 일단은 한옥을 구해야 하니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대상 지역과 가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우선, 전국에서 한옥이 가장 잘 보존된 경북 안동을 대상지역으로 선정했다. 문제는 대상 가옥이었다. 대부분의 고택들은 노후되고,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종택에도 찾아다니며 종손, 종부께 설명을 드려도 외국사람을 집에 재우는 것이 영 못마땅하신 모양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고택 몇 곳을 섭외할 수 있었다.
다음은 체험 프로그램 개발이다. 안동 하회마을 체험의 경우 대략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됐다. 먼저, 직원들이 차에 병풍, 문갑, 사방탁자, 도자기 등 골동품과 방자유기, 이부자리, 조명 기구, 취사 도구 등을 싣고 출발해 현장에 도착후 집안 청소, 정리 정돈, 골동품, 집기 등의 배치를 마친다. 다음날 손님들이 도착 후 집에 여장을 풀고 다례 체험을 한 뒤 마을을 둘러본다. 그러는 동안 직원들은 병산서원으로 이동해 조명을 설치하고, 휴대용 취사 도구를 이용해 전을 부친다. 마을 둘러보기를 끝낸 손님들이 석양 무렵 병산서원에 도착해 서원 둘러보기를 끝내면 해가 병산을 막 넘어간다. 역시 ‘타이밍이 생명’이다.
이제 손님들이 병산서원 만대루 누각에서 풍광을 감상할 즈음 미리 설치해둔 조명이 빛을 발한다. 서치라이트 등이 켜지면서 병산을 밝히고, 간접 조명으로 한옥의 우아한 선이 살아난다. 그 때 소반에 동동주와 전, 김치 안주가 등장하고, 누각 내부에는 인공 달이 걸리고, 도포에 갓을 쓴 대금 연주자가 자리를 잡는다. 어스름한 풍광 속에서 동동주 한 잔에 대금 청성곡 소리를 듯는 멋이란…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러 상상하지 못할 ‘황홀경’이다.
대충 그때쯤이면 슬슬 손님들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나오고, 몸에 소름이 돋는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듣기 좋았던 멘트는 일본인 사업가 한 분으로부터 나왔다. ‘지난 25년간 사업차 무수히 한국에 왔지만 오늘 밤이야말로 진정으로 한국의 멋과 문화를 느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겠다.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이렇게 멋드러진 풍류를 즐기는 동안 직원들은 다시 숙소로 이동해 저녁식사 준비에 바쁘다. 식사는 한우 양념 갈비 BBQ다. 경험상 인종을 불문하고 가장 환영받는 한국 음식이다. 한창 들뜬 손님들이 돌아와 대청 마루에 차려진 저녁 상을 보고 환성을 지른다. 식사가 끝날 즈음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가야금 연주자가 등장해 가야금 병창을 한다. 외국인들도 흥이 오르면 어깨춤을 추고 무릎 장단을 맞춘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풀먹인 뽀송 뽀송한 이부자리는 일본인들이 선호하고, 서양인들은 부드럽고 포근한 이부자리를 좋아한다. 뜨끈뜨끈한 온돌 방에서 밤새 몸을 지지고 피로를 푼 손님들은 온돌 예찬에 입에 침이 마른다. ‘한국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온돌이다’라는 손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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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안동에 위치한 ‘락고재 안동 하회마을’의 밤 풍경. |
다음 일정은 봉정사 관람이다. 절에서 발우 공양을 했으면 좋으련만 불가능하단다. 도리 없이 직원들이 고생할수밖에. 봉정사로 오르는 도중 왼편에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그마한 정자가 있다. 손님들이 관람하는 동안 직원들은 그곳에서 밥을 짓고 준비해간 목기에 갖가지 나물을 담아 산채 비빔밥을 준비한다. 비빔밥이 외국인들에게 환영 받을 것이란 걸 난 이미 15-6년 전에 알았다. 손님들이 서울로 돌아가면 직원들은 뒷정리를 한다. 전날 준비 했던 것의 역순이다. 우리가 가져갔던 물품들을 차에 싣고 본래 있던 물품들을 재배치한다.
경주 양동마을 회재 이언적 선생의 종택인 독락당에서의 체험도 환상적이었다. 집 안에 있는 정자 ‘계정’에 앉아 옆 계곡의 너럭바위에서 하는 연주를 듣는 맛이란…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를 찍는 것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손님은 배우, 직원들은 스태프, 난 감독. 월 평균 2회, 겨울 빼고 연 8개월, 5-6년을 했으니 꽤나 다작 감독이었던 셈이다.
반응은 열광적인데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역시 화장실이었다. 집기, 이부자리 등등 을 다 가져가도 화장실은 못 가져 가니 말이다. 그렇다고 남의 집에 화장실을 새로 지을 수도 없고. 둘째는 계절적 요인이다. 한국의 문화는 자연과 함께하기에 대청마루, 정자, 누각 등지에서 즐겨야 제맛인데 겨울은 그러기엔 너무 춥다. 셋째는 규모의 문제다. 6명까지는 연출하는대로 잘 몰입하고 제대로 느끼는데 7-8명이 넘어서자 패가 갈리며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분위기가 산만해졌다.
당시 1박 2일 여행 요금이 1인당 40만 원이었다. 그때로서는 대단한 고가 여행 상품이었는데 인원을 4-6명으로 늘리니 인건비, 경비를 제하면 거의 적자 수준이었다. 그러나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이 사업을 몇 년간 이어온 것은 ‘문화는 돈이다. 돈이 안 되면 확대 재생산이 안 된다’는 나의 신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해서였다. 우리도 얼마든지 고급 문화관광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때의 경험은 훗날 한옥 문화 체험관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왜 ‘맨땅에 헤딩하기’란 부제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되시는지?
안영환은?
일명 ‘한옥 프론티어’라 불리는 안영환(53)은 한옥 체험관 ‘락고재 서울’과 ‘락고재 안동 하회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한옥 숙박의 고급화를 주도하고 있다. 또 서울 명동에 있는 한옥 ‘진사댁’ 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옥 누각 ‘몽인각’을 통해 한옥의 상업적 프리미엄을 입증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한옥 건축학교를 통해 한옥의 표준화를 시도하고, 한옥 호텔을 건축해 업그레이드 된 형태의 한옥을 세계인에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 안영환 한옥 ‘락고재(樂古齋)’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