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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의 항일행적
조인스 매거진 뉴스위크 929호 (2010.05.12) [24]
70년, 64년 만에 입을 연 두 증언자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박정희의 문경초등학교 시절 여제자 이순희(81·한국극빈아동선도회
장)씨가 그(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 직전에 벌어졌던 ‘교무실 린치 사건’을 공개했다.
(린치=특정인에 대한 민간인들의 폭행)
70년 만의 이 증언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제기되지 않았다. 더없이 생생한 그의 말을 종합하면,
교사 박정희는 학교 재직 기간 내내 반일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불령선인(不逞鮮人, 일제에
비협조적인 인물)으로 찍혀 있었고, 이를 조사하려고 나온 시학관(視學官, 장학관) 일행이 학교를
방문하던 날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일본인 교사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다.
1939년 10월께 벌어진 상황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복수할 거야!”라고 외치며 학교를 떠났던 박
정희는 그 길로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했으며....
이하생략
광복군 사령관 이청천 장군은 일본군 장교 생활을 5년간 했습니다. 이런 경력이 항일 투쟁에 도움
이 되었던 것이죠.
독립투쟁을 하려면 군사학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던 박정희는 결국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합니다. 민
족독립 정신이 강했던 박정희는 이청천 장군처럼 되고자 했던 것이죠.
박정희가 근무한 만주군 제8단은 단장도 중국인이고 사병 전원이 중국인이었습니다. (장교 중에 일
본인 8명, 조선인 4명.).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소위,중위)로 1년4개월 근무 .
박정희는 일본인들에 복수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했으며, 나이가 많아서 입학이 어렵자 혈
서를 쓰고 입학했습니다.
혈서에 나오는 "祖國에 충성함"에서 조국은 한국이었던 것입니다. 혈서는 박정희의 항일 활동을 위
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문경 보통학교 교사시절 제자들의 증언 자료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1937-1940) 교사로 근무
이영태씨의 증언입니다.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음악시간에는 황성옛터,심청의 노래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 주셨습니다.
평소 '전세계를 얻는다 할지라도 민족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망하는 길밖에 없다.우리는 남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기 위해서 앞으로 노력해야 한다.'라고 학 생들의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국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일본인 교사들과는 자주 싸우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하루는 수석교사였던 일본인 야나자와와 말다툼 끝에 그가 ´조선놈´이라고 하자 의자를 집어 던 진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인 순사중에 '오가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자주 다툼이 벌어졌습니다.후에 박선
생님이 만주군관학교에서 군도(긴칼)를 차고 문경에 왔을 때 오가와순사가 박선생님한테 뭐라고 했
는데 박선생님이 오가와순사를 크게 혼낸 적이 있었습니다."-
정순옥씨의 증언입니다.
"어느 일요일,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새로 오신 선생님(박정희)의 하숙 집을 찾아갔습니다. 호기심
을 가지고 선생님의 방을 살펴봤더니 책상 위에 커다란 사진액자가 걸려 있는데 배가 불룩 나오고 앞가슴 양편에 단추가 죽 달려 있는 사람인데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영웅 나폴레 옹이라고 하시며 나폴레옹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4월 어느날 소풍을 가게 되어 고운 옷으로 갈아 입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선생님 은 등산복 차림에 어깨엔 나팔을 메고 길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우리들이 장난을 치거나 줄이 흐트 러지면 한 대씩 벌주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깊은 물에 빠져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순간 박 선생님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한참 만에 그 아이를 건져내어 인공호흡을 하여 살렸습니 다 . 다른 선생님들은 그 동안 둑에서 발만 둥둥 구르고 계셨어요.
그리고 언젠가 박선생님과 일본인 교사 두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인선생 한분이
조선여성은 예의가 없다느니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양동이를 이고 다니느니하며 우리나라 여자의
흉을 보았습니다.
이에 박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들 저 말을 잘 새겨 들어라.가난하고 무지하면 남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이다.우리끼리 있을 때는 절대로 일본말을 쓰지 말고 조선말을 쓰자.´고 했을 때 우리는 철없이..´조선말 쓰면 퇴학당하는데 왜 그러세요?´라고 반박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주영배씨의 증언입니다.
"39년, 내가 보통학교 5학년일 때 조선어를 가르치며 박선생님께서는 "이글을 잘 배워야 한다"라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박선생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가정실습때는 문경에서 12키로나 떨어진 산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셨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그 뒷모습이 산록으로 숨어들 때는 울고 싶도록 감사했습니다."
전경숙씨의 증언입니다.
"박선생님은 우리집으로 하숙집을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를 ´모친´이라고 불렀습니 다. 식사는 가리는 것이 없었고 복장은 단정하였으며 출근은 빨랐습니다. 언제나 숙제를 내주시고 철저히 검사하여 평가를 해 주셨습니다.
월요일마다 공책을 점검하시고 글씨를 바르게 쓰도록 지도해 주시고 일기와 편지쓰기를 장려하셨습 니다. 5학년 20명과 2학년 40명을 한 교실에서 복식수업을 하면서도 질서가 정연했습니다. 말은 간 단명료하였으며 청소에 신경을 쓰고 유리창,천정의 거미줄,화장실 청소를 철저히 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청소도구를 완비하여 가지런히 정리정돈되도록 하였으며 책상의 줄이 비뚤어지고 환경이 지저분 한 것을 매우 싫어 하셨습니다.
위인전 같은 이야기를 자주해 주시고´너희들도 이와같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을 소풍때 문경새재에 갔을 때는 제 1관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시고 점심을 싸오지 못한 학생은 선생님이 도시락을 나누어 주시던 일, 발목을 삐어 걸음이 곤란한 학생을 업고 산길을 내려 오시던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전도인씨의 증언입니다.
"하루는 박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습니다. 그때 일본인 청부업
자 한명이 담배를 문 채 교무실 안으로 들어 와 "오이 ! 교장 계신가?"하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일본인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 아무 대꾸가 없었습니다.
그사람이 재차 똑같이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일본인들이 부르짖는 내선일체가 진실이라면 당신이 내개 그런 언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등국민으로 자처하고 싶거든 우선 교양 있는 국민이 돼야지, 담배를 물고 교무실에 들어온 것만 해도 무례하기 그지 없는데 언동까지 몰상식한 사람이라면 나는 너같은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다. 어서 나가봐 !"라고 내몰았습니다."
황광실씨의 증언입니다.
"박선생님이 우리학교에 오셨을 때 나는 6학년 반장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선어를 가르
치셨습니다. 역사 시조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하셨습니
다.
박선생님이 일제 치하에서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신 것은 분명합니다. 학생 한사람을 복도에
세워 놓고 일본인 교장이나 교사가 오지 않나 망을 보게 했습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천황의 사진에다 장난을 하고 교무실로 불려가 혼이 난 일이 있었습니다.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우는 따위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박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이었으나 자주 부르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졸업때 앨범을 선물로 받
았습니다."
-세계일보 "만주군 박정희를 보는 시각" 발췌
제자들의 증언으로 미뤄볼 때 박정희는 일본인에게 지지 않으려는 오기와 배짱이 대단했던 것 같다 . 이런 그의 성향은 대구사범 학생,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 일제의 지나친 황민화 정책에 대한 반 발심과 연결된다.
교사 박정희가 황민화 정책에 반발하며 조선인 학생들에게 나름대로 민족혼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 한 흔적은 제자들 증언에서 확인된다. -세계일보 "만주군 박정희를 보는 시각" 발췌
-발췌: 권장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박정희는 교사로서 의무복무를 마치고 만주군관학교 2기로 입학한다. 그는 이곳에서도 식민지 민족
으로써 민족주의 신념을 키워 나갔다. 만주군관학교 역시 사범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족차별이
심해서 박정희의 민족감정은 부추겨질 수 밖에 없었다.
만주군관학교시절1기생 이기건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박정희에게 '자네는 왜 여기 왔는가'라고 물 었을 때, 박정희는 "왜놈 보기 싫어 왔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는 "일제는 곧 망합
니다. 우리는 독립하고야 말 것입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고 한다.
이섭준에 의하면, 박정희는 특히 2.26사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배울 것은 군사학뿐이다. 우리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했으며, 독립은 "혼자 사는 것이다.
남의 간섭 안 받고 우리 스스로 사는 것이다"고 했다고 한다.-발췌: 권장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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