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3등졸업이 운명을 바꾸다.
육사 생도를 위한 훈련은 구보와 같은 식으로 했지만 교재가 없어서 수업 진행이 잘 안됐다. 그래서 나는 소장하고 있던 일본 육사 교과서를 번역해 사용하자고 교무과에 건의 했다. 그런데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교과 편성반에 투입되어 [보병교육의 지침]을 편찬했다.
김동빈 대위와 7명의 후보생들이 만든 이 교재는 100% 일본 육사 교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책을 교본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친일이다 뭐다 하면 할 말이 없다.
당시 일본군이 버리고 간 군복을 비롯해 총이나 칼 요대 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으니 일본군의 패잔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당시 그런 표현이 있었다) 하지만 물자가 없는 가난한 신생국 처지에 맨몸으로 버틸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우리 군과 육사 생도의 자화상은 이처럼 비참했다. 그러나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48년 4월 6일은 육사 5기생 400명의 졸업식 날이다. 1연대 교육대 과정3개월 육사5기 후보생 과정 6개월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하는 날이다. 나는 유동열(일본 육사15기)통위부장(현 국방장관)으로 부터 졸업장과 소위 임관증 그리고 졸업성적 3등의 메달을 받았다.
지금 같으면 가족들이 졸업식장에 와 꽃다발을 안기면서 축하해 주었겠지만, 그 당시는 사랑하는 아내나 부모님이 참석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참석 안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은 3등 메달도 호주머니에 넣고 배속지인 3연대(전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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