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독도는 '도쿠도'일뿐 다케시마가 아니다/제9대공군참모총장 장지량 장군

마당쇠행정사 2009. 2. 20. 10:44

 

독도는 ‘도쿠도’일 뿐 다케시마가 아니다.

일본 육사 예과를 마치고 본과(항공사관학교)로 진급한 1945년 3월 어느 날, 학교

에 늙은 병사가 하나 들어 왔다.얼굴에 깊은 주름이 팬 어부 출신의 40대 중늙은이

였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젊은이들을 최전선으로 내보내고,

 후방은 이런 노병을 재소집해 군을 지원토록 하고 있었다.

 

그 늙은 병사는 동해 쪽의 어촌 출신으로 내게 유독 친근감을 보였다. 장제스 총통

 의 일본 육사 시절 그의 당번병을 했으며, 그래서 장제스 총통과 같은 발음의 성씨

 인 나를 중국인으로 이해하며 친근감을 보였다.그는 노역을 하다 말고 내 곁으로

다가와 곧잘 고향 애기를 했다.

“장 생도, 내 선조는 어부야. 고기를 많이 잡는 비법을 알고 계셨지”

“그래요, 그 비법이 무엇인가요?”

“비법이랄 것도 없을 거야. 배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면, ‘도쿠도’라는 무인도가 있

는데..., 그 섬 주변이 황금 어장이야. 거기만 가면 만선을 이룬다네. 도쿠도는 황금

어장이야.”

그는 감회어린 표정으로 늘 황금 어장인 ‘도쿠도’를 내게 자랑 했었다. 그 '도쿠

도‘가 바로 독도다. 일본이 말하는 ’다케시마‘는 당시에도 없었고 그 전에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독도를 일본 발음으로 ’도쿠도‘라고 했고 섬 도(島)를 일본어 발음

’시마‘라고 부르다 보니 ’도쿠시마‘ 됐고 그것이 또 일본 발음상 부르기가 불편해

’다케시마(竹島)‘로 부른 것이 오늘날 다케시마인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竹島‘ 즉

독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위섬일 뿐 대나무가 자라지도 않았고 자랄 수도 없다.

지역 특작물이나 특성과 연관시켜 지명을 붙인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불행히도 당시 ‘도쿠도’가 ‘독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다케시마’가 아닌 ‘도쿠도’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일본은 지금 ‘다케시마’라고 부르

 며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것을 보면서 본질적으로 섬사람들의 속 좁은 면을 보게 된다.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병합한 뒤 독도를 다케시마라 불렀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지명이 붙여진 것이다.(그

런  지명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그런 지명이 모두 일본 땅이란 말인가)

 

일본 제국주의 패망과 함께 1946년 1월 미국 점령군 사령관의 명령을 통해 독도는

일본의 주권 범위에서 벗어났다. 조선은 독도를 포함한 모든 영토를 갖고 독립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독도라는 돌섬은 나라가 망하면서 한반도와 함께 일제 식민 지배

에 있었지만 해방이 되자 한국 땅으로 되돌려진 것이다. 한반도를 되찾은 것과 마

찬가지로 독도도 제자리로 돌아온 것 뿐이다.

 

일본 육사 시절 늙은 병 사가 선조들로부터 들었다는 ‘도쿠도’(독도)는 1800년대 초 이전부터 명명됐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말해주고 있다.

 

최근 국내의 지일파 학자들이 일제 식민 지배가 한국 발전에 기여했다는 발언을 했

다.한 마디로 언어도단이다. 철도 건설은 대륙 침략을 위한 방편으로 만든 것이었

고, 농산물과 광물을 비롯해 집안의 놋그릇이나 숟가락, 젓가락까지 수탈해 간 것

을 두고 은총 운운 하는 것은 망언이 아닐수 없다.

 

특히 조상의 묘를 쇠꼬챙이로 찔러서 광물질과 도자기까지 훔쳐 간 파렴치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집단이다. 조상의 묘까지 샅샅이 파헤쳐 찾아낸 쇠붙이는 폭탄을 제

조하는데 사용하고, 보물은 가져가 교토 등 그들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문화재를 도독질 해 간 것부터 되돌려 주고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빨간 마후라 하늘에 등불을 켜고" P82~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