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10년 영욕

마당쇠행정사 2013. 7. 14. 21:03

1998년 외환위기때 일어나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흔들리다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던  강덕수(姜德壽) STX그룹 회장의 신화가 흔들리고있다.강덕수 회장은 존폐 위기의 쌍용중공업을 10년만에 재계순위 10위권의 그룹으로 키워낸 인물이다.하지만 STX그룹이 유동성위기로 12년 만에 최대위기를 맞으며 강덕수호(號)도 좌초위기에 몰렸다. 이에 강 회장은 채권단에 보유 지분을 모두 포기하고 그룹 회생을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대문상고를 졸업한 강덕수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강 회장과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뛰어난 사업 수완과 끈기를 기억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1980년대 토요일 근무가 당연한 시절이었다. 강덕수 회장은 토요일 업무가 끝나면 명동에서 물건을 떼다 기차역으로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명동은 서울 트렌드를 주도하는 상권인데, 여기에서 옷과 신발 등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모아 고향 경북 선산과 가까운 대구 동성로를 찾은 것이다. 토요일 오후 늦게 도착한 동성로에서 일요일까지 장사하고 명동에서 가져온 물건 대신 돈을 쥐고 일요일 오후 늦게 서울로 올라오는 강행군이 계속됐다. 당시 강 회장을 지켜봤던 쌍용그룹 전 직원은 “그의 부지런함과 장사 수완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이후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기획금융담당과 경영관리담당 임원을 지냈다. 샐러리맨이었던 강 회장에게 기회가 온 것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이다. 당시 쌍용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던 강덕수 회장은 평소 조선 사업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다.

 

사장 재직 시절 받은 스톡옵션과 20억원의 사재(私財)를 털어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쌍용중공업을 직접 인수한 것이다. 서울 강남에 있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기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이때부터 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쌍용그룹 관계자들은 강 회장이 1990년대부터 조선·해운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구상을 구체화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쌍용중공업 재직 시절 강 회장은 “쌍용의 미래를 이끌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조선이다”라며 조선 사업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던 쌍용그룹은 조선 사업을 육성할 여력이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IMF 외환위기로 부실기업이 된 쌍용중공업이 매물로 나오자 이를 전격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는 수(數)에 밝은 강 회장의 계산력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놓은 채권단 산업은행과의 관계도 도움이 됐다. 그룹 재무를 총괄하던 강덕수 회장은 산업은행과 자주 접촉했는데, 업계에서는 그가 산업은행 말단 여직원에서부터 산업은행 총재까지 모두 알고 지낸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샐러리맨에서 기업 오너로 신분이 바뀐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의 사명을 STX로 바꾸고 현재의 ㈜ STX와 STX엔진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강 회장 특유의 ‘스피드 경영’이 시작됐다. 공격적 인수합병(M&A)에 나선 강 회장은 선박용 엔진을 제작하던 쌍용중공업을 모기업으로 2001년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대동조선(STX조선)과 2002년 산단에너지(STX에너지)를 차례로 인수했다.  

 

이어 2004년에는 STX보다 매출이 더 큰 범양상선(STX팬오션)을 품었다. ‘알짜매물’로 꼽힌 범양상선을 인수하기 위해 강덕수 회장은 경쟁 기업보다 훨씬 높은 인수 금액을 제시해 승기(勝機)를 잡았다. 당시 재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평가했다. 인수자금은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HSBC 등 해외 투자기관에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충당했다. 범양상선을 인수하며 STX는 연매출 5조원에 가까운 조선·해운 전문그룹으로 거듭났다.  

 

10년 동안 STX의 성장은 실로 놀라웠다. STX그룹이 출범 6년 만에 재계 20위권에 진입했고, 2009년에는 재계 순위 12위까지 올랐다. 공격적 M&A로 몸집을 키운 덕분이었다. 당시 같은 규모의 대기업들은 위기에 대비해 엄청난 현금을 쌓는 데 집중했지만, 강덕수 회장은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사업으로 남은 이익을 회사 곳간에 쌓아두는 것은 또 다른 기회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잇단 M&A 행진에서 강 회장이 강조한 것은 ‘시너지’다. 기존 사업과 연관된 기업을 인수해 전체 사업이 상승효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엔진을 만드는 쌍용중공업을 바탕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사 대동조선을 인수했고, 여기에 해운회사를 추가했다.  

 

STX그룹이 단기간 엄청난 성장을 이룬 데에는 조선·해운 업황이 호황을 만난 시기적 요인 외에도 상고 시절부터 계산에 밝았던 강 회장의 탁월한 재무적 감각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평가한다. STX가 몸집보다 큰 범양상선을 품을 당시 일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평가했지만, 강 회장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빠르게 자금을 조달해 인수에 성공했다.  

 

당시 증권 관련 규정에는 기업의 대주주가 바뀌면 1년 내 국내에 상장할 수 없도록 했는데, 이는 당장 기업 인수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STX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강 회장은 국내 주식시장이 아니라 싱가포르 증시에 범양상선을 직(直)상장하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로써 STX는 범양상선 인수에 들어간 자금을 곧바로 회수할 수 있었다.  

 

강 회장은 또 해외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유럽과 중국 등에 빠르게 진출했다. 2006년 중국 동북부 다롄(大連)의 외딴섬(창싱다오·長興島)에 15억달러를 투자해 조선소를 짓기로 결정했다. 호황기를 맞은 세계 조선 시장에서는 선박 발주가 쏟아지는데 진해 조선소에서만 물량을 소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STX는 국내보다 3배 빠른 속도로 다롄조선소를 완공했고 2008년 첫 선박을 진수했다.  

 

강덕수 회장은 조선업의 심장부인 유럽에도 진출했다. 2008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유럽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한 것이다. 인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크루즈선 건조 기술이 한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유럽 국가들이 반대에 나섰고 노조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또 유럽연합(EU)이 반(反)독점법을 들이밀며 STX의 아커야즈 인수에 제동을 걸어 인수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강덕수 회장이 정면 돌파에 나섰다.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STX가 아커야즈를 인수할 때 나타나는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강 회장의 정공법 덕분에 STX는 아커야즈를 인수했다. 당시 8000억원에 이르는 인수 비용은 STX엔진과 STX조선 자금으로 전액 조달했다.  

 

덕분에 STX는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다. 강덕수 회장과 STX그룹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2009년 강덕수 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비상임 부회장으로 선출되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지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STX그룹은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상위에 꼽혔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세계적 기업을 일군 강 회장의 리더십도 크게 주목받았다.  

 

M&A만이 STX의 성장동력이었던 것은 아니다. 강덕수 회장은 엔진부품을 만드는 STX엔파코(현 STX중공업)를 세워 그룹의 시너지를 높였고, STX건설도 설립해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 신재생에너지와 해외 자원개발 등 에너지 관련 분야에도 진출하며 2007년 태양광 업체 STX솔라를 세웠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강덕수 회장과 STX그룹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세계 금융위기로 그룹의 양대 축인 조선·해운업이 함께 불황에 빠지며 STX그룹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세계 경제가 침체하자 해운 물동량이 줄고 선박 발주량이 감소했다. STX팬오션은 상선(商船) 운임 하락과 물동량 감소에 직격탄을 맞았고, STX조선은 수주 가뭄에 매출이 급감했다. 조선·해운 업황 침체는 선박 엔진과 조선 기자재 사업에도 영향을 미쳐 STX엔진과 STX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 수익도 줄줄이 하락했다.

 

경기에 민감한 조선과 해운을 양 축으로 수직계열화한 STX의 사업 구조가 그룹의 위기를 키웠다. STX 주력 사업인 조선과 해운은 경기 상황에 함께 반응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위험 회피(헤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강 회장은 2009년 계열사 STX에너지와 STX중공업을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하며 자금을 조달하려 했지만, 상장 계획이 차질을 빚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며 조선·해운 시황이 더 악화됐고, STX그룹 경영난도 더 심각해졌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STX그룹의 전체 자산은 24조원을 넘었지만, 이 중 부채가 17조원으로 부채비율이 267%에 이른다. 그룹 전체 매출이 18조원에 이르지만, 조선·해운 사업이 적자 전환하며 1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동안 그룹을 키워 왔던 ‘성공 방정식’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STX는 자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한 다음 사업을 빠르게 성장시켜 수익을 내 빌린 자금을 갚아 나가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 왔다. 이런 성장 방식은 2008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조선과 해운이 호황을 구가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원활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며 상황이 180도로 달라졌다. 각 계열사의 사업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그룹 전체의 재무 상태가 나빠졌다. 결과적으로 세계 경기가 불황에 빠지는 시나리오는 고려하지 않은 채 속전속결로 많은 기업을 인수한 ‘강덕수의 승부’가 그룹을 수렁에 빠뜨린 것이다.  

 

결국 STX그룹과 채권단은 지난해부터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2012년 12월 일본 금융회사인 오릭스에 STX에너지 지분 40%를 넘기며 3600억원을 유치했고,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에 STX OSV 지분 전량을 넘기면서 7700억원을 조달했다.  

 

STX OSV는 강덕수 회장이 2007년 인수한 STX유럽(아커야즈)의 자회사로, 노르웨이·루마니아·베트남브라질에 있는 조선소에서 해양 특수선을 제작한다. 강덕수회장은 많은 인터뷰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가장 기쁜 순간으로 “유럽연합으로부터 아커야즈 인수를 승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로 꼽으며 애착을 보였지만,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지며 천신만고 끝에 인수한 유럽 자회사를 매각해야 했다.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했지만 사정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강 회장은 그룹의 양대 주력사 중 하나인 STX팬오션 매각을 결정했다. STX팬오션은 국내 최대 벌크 선사(船社)로 STX그룹의 주요 계열사다. 강 회장이 팬오션 매각 카드까지 꺼내든 것은 그만큼 재무 상황이 좋지 않고, 조선·해운 중심의 사업 구조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STX팬오션은 해운업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마땅한 매수자를 찾지 못해 산업은행에 매각됐다.  

 

STX는 또 STX에너지와 중국 계열사인 STX다롄조선, STX다롄중공업의 지주사인 STX중국조선투자유한공사 지분도 매각할 계획이다. 강 회장이 보유한 STX에너지 지분 나머지를 모두 국내 사모펀드에 매각하고, STX중국유한공사 역시 경영권을 포함해 지분 75%를 중국 정부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TX유럽을 통해 보유한 STX프랑스와 STX핀란드도 매각 과정에 있다.  

 

STX그룹의 구조조정은 사업 구조를 플랜트·에너지를 아우르는 조선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으로 윤곽이 잡혔다.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신청한 STX·STX조선해양·STX중공업·STX엔진에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채권단에 따르면 강덕수 회장은 STX조선해양과 관련된 다른 계열사 지분을 모두 포기하고 그룹 정상화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채권단은 그룹 정상화를 위해서는 강덕수 회장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회생을 위해 강 회장이 지분을 포기한다고 밝혔지만,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룹 오너의 역할을 강조한 만큼 경영은 강덕수 회장이 계속 맡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STX그룹 사태는 STX그룹의 모태인 쌍용그룹의 역사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1980년대 국내 5대 그룹에 속하던 쌍용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룹 모기업인 쌍용양회만 남기고 쌍용건설과 쌍용정유, 쌍용중공업을 모두 매각했다. 1960년대 탄생한 쌍용그룹은 시멘트 사업을 바탕으로 건설과 자동차, 증권, 중공업 등 경기에 민감한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지만,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그룹이 해체됐다.  

 

선박·엔진·제조업을 기반으로 조선과 해운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온 STX그룹도 세계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인수한 사업을 매각하며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이 쌍용그룹과 닮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강덕수 회장이 지분을 모두 포기하면서 그룹 정상화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가 회복되며 STX의 주력 사업인 조선 시황이 좋아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STX그룹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자료 : 주간조선(연선옥/조선비즈 기자)>

출처 : 두 리 번
글쓴이 : haj406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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