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中國의 科擧制度와 中國科擧에 合格한 우리나라 사람들

마당쇠행정사 2013. 11. 19. 22:02


 

中國科擧制度中國科擧合格한 우리나라 사람들

 

中國科擧制度

명나라의 과거 제도는 초장(初場)7()으로 시험하는데 모두 오경(五經)과 사서(四書)의 대의(大義)이고, 중장(中場)에는 논(), (), 판어(判語)로 시험하며, 말장(末場)에는 오책(五策)으로 시험한다. 응시한 선비들은 항상 짧은 시험 시간에 쫓기느라 솜씨를 부릴 수 없어서 정문(程文 과거의 일정한 형식에 맞는 문장)으로서 모범이 될 만한 것은 겨우 열에 하나 정도이다.

시험 답안집[試錄]의 글이 대부분 감독관의 손에서 나오는 까닭은 장차 학자들의 모범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가정(嘉靖) 연간에 예부(禮部)가 비준을 받아 시험관들로 하여금 응시자들의 본문(本文)을 기록하고 불필요하게 시험관 스스로 짓지 않도록 하였다.

뒤에 상서(尙書) 하언(夏言)이 말하기를, “시험 답안집의 문리가 도리에 맞지 않고 체제가 뒤섞여 엉망인데, 처음 배우는 선비들에게 다투어 그 법을 본받게 하고 있습니다.” 하니, 이에 시험 감독관으로 하여금 옛 관례대로 응시자들의 시험 답안을 가지고 거듭 손질을 가하게 하였다.

 

中國 科擧試驗合格한 우리나라 사람들

() 장경(長慶 목종(穆宗)의 연호) 원년(821)에는 신라의 김운경(金雲卿)함통중(咸通中)김이어(金夷魚)김가기(金可紀)최치원(崔致遠)최광유(崔匡裕)김문울(金文蔚)이동경복(李同景福)최승우(崔承祐)최언휘(崔彦撝)최광윤(崔光允)박인범(朴仁範)김악(金渥)이고, 발해의 고원고(高元固)오소도(烏炤度)오광찬(烏光贊)사극찬(沙亟贊)이다. 송조(宋朝)에 과거 합격자 명단의 말미를 차지한 사람으로는 고려의 김행성(金行成)강전(康戩)최한(崔罕)왕빈(王彬)김성적(金成績)강무민(康撫民)권적(權適)조석(趙奭)김서(金瑞)강취정(康就正)이다. 연우(延祐 () 인종(仁宗)의 연호) 5(1318)에 안진(安震), 지치(至治 원 영종(英宗)의 연호) 원년(1321)에 최해(崔瀣), 태정(泰定 원 진종(晉宗)의 연호) 원년(1324)에 안축(安軸), 원통(元統 원 순제(順帝)의 연호) 원년(1333)에 이곡(李穀), 지정(至正 순제의 연호) 6(1346)에 안보(安輔), 지정 7(1347)에 윤안지(尹安之), 지정 9(1349)에 이인복(李仁復), 지정 13(1353)에 이색(李穡)김승언(金升彦) 등 아홉 사람이 있고, ()나라 과거에 합격한 자는 김도(金濤) 한 사람이다.

출처 : 구국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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