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의 科擧制度와 中國科擧에 合格한 우리나라 사람들
中國의 科擧制度
명나라의 과거 제도는 초장(初場)에 7편(篇)으로 시험하는데 모두 오경(五經)과 사서(四書)의 대의(大義)이고, 중장(中場)에는 논(論), 표(表), 판어(判語)로 시험하며, 말장(末場)에는 오책(五策)으로 시험한다. 응시한 선비들은 항상 짧은 시험 시간에 쫓기느라 솜씨를 부릴 수 없어서 정문(程文 과거의 일정한 형식에 맞는 문장)으로서 모범이 될 만한 것은 겨우 열에 하나 정도이다.
시험 답안집[試錄]의 글이 대부분 감독관의 손에서 나오는 까닭은 장차 학자들의 모범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가정(嘉靖) 연간에 예부(禮部)가 비준을 받아 시험관들로 하여금 응시자들의 본문(本文)을 기록하고 불필요하게 시험관 스스로 짓지 않도록 하였다.
뒤에 상서(尙書) 하언(夏言)이 말하기를, “시험 답안집의 문리가 도리에 맞지 않고 체제가 뒤섞여 엉망인데, 처음 배우는 선비들에게 다투어 그 법을 본받게 하고 있습니다.” 하니, 이에 시험 감독관으로 하여금 옛 관례대로 응시자들의 시험 답안을 가지고 거듭 손질을 가하게 하였다.
中國 科擧試驗에 合格한 우리나라 사람들
당(唐) 장경(長慶 목종(穆宗)의 연호) 원년(821)에는 신라의 김운경(金雲卿)ㆍ함통중(咸通中)ㆍ김이어(金夷魚)ㆍ김가기(金可紀)ㆍ최치원(崔致遠)ㆍ최광유(崔匡裕)ㆍ김문울(金文蔚)ㆍ이동경복(李同景福)ㆍ최승우(崔承祐)ㆍ최언휘(崔彦撝)ㆍ최광윤(崔光允)ㆍ박인범(朴仁範)ㆍ김악(金渥)이고, 발해의 고원고(高元固)ㆍ오소도(烏炤度)ㆍ오광찬(烏光贊)ㆍ사극찬(沙亟贊)이다. 송조(宋朝)에 과거 합격자 명단의 말미를 차지한 사람으로는 고려의 김행성(金行成)ㆍ강전(康戩)ㆍ최한(崔罕)ㆍ왕빈(王彬)ㆍ김성적(金成績)ㆍ강무민(康撫民)ㆍ권적(權適)ㆍ조석(趙奭)ㆍ김서(金瑞)ㆍ강취정(康就正)이다. 연우(延祐 원(元) 인종(仁宗)의 연호) 5년(1318)에 안진(安震), 지치(至治 원 영종(英宗)의 연호) 원년(1321)에 최해(崔瀣), 태정(泰定 원 진종(晉宗)의 연호) 원년(1324)에 안축(安軸), 원통(元統 원 순제(順帝)의 연호) 원년(1333)에 이곡(李穀), 지정(至正 순제의 연호) 6년(1346)에 안보(安輔), 지정 7년(1347)에 윤안지(尹安之), 지정 9년(1349)에 이인복(李仁復), 지정 13년(1353)에 이색(李穡)ㆍ김승언(金升彦) 등 아홉 사람이 있고, 명(明)나라 과거에 합격한 자는 김도(金濤) 한 사람이다.
'사랑방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3 용사 (0) | 2013.11.26 |
|---|---|
| [스크랩] 淸國北洋大臣 李鴻章(1823~1901)이 朝鮮領相 橘山李裕元에게 보낸 書信 (0) | 2013.11.26 |
| [스크랩] 金海金氏 始祖 金首露王 (0) | 2013.11.17 |
| [스크랩] 두문동 72현(杜門洞七十二賢) (0) | 2013.11.15 |
| [스크랩] 주왕산 (0) | 2013.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