檀君은 堯임금과 幷立
近世에 國際慣用語로써 同文同祖와 共榮共存 또는 輔車脣齒(보거순치) 素敦睦誼(소돈목의)等 語句가 있다.
그러나 어찌 이러한 親密한 말들을 그릇된 表現이라 할 수 있으리오마는 눈을 돌려 國際間의 實際問題를 直視하면 입으로는 꿀맛 같은 달콤한 말을 하면서 허리춤에 는 匕首를 품어 있고, 災殃의 原因이나 根本이 되는 씨앗을 품고 있는 冷酷한 外交家들도 곧잘 이런 말들을 使用하고 있으니 이제 이런 말을 하는 者는 하고 듣는 者도 無感覺하게 들어 한갓 外交上의 사탕발림 말로 알 뿐이지 조금도 感動하는 바가 없게 된 實情이다.
이제 내가 韓中 兩民族間에 眞實로 密接한 사이라는 表現을 阿諂(아첨)하는 뜻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문득 國際間의 慣用語들을 듣고 이것이 心中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이 아니고 面前에서 꾸며서 하는 外交修飾辭로서 헛된 形式으로만 外面致禮를 한 실속 없고 輕薄한 文面과 空虛한 儀禮라고 하여 이것을 破棄 할 것이 아닌 줄 안다, 도리어 韓中 兩民族間의 實際的 關係에 비추어 보면 歷代 祖先 以來 骨髓에 스며들고 肺腑에 銘心해 둘 일은 서로 密接하고 가까워서 그 興廢存亡이 兩國이 잠시라도 分離해서는 숨을 쉴 수도 없는 形便이다.
이처럼 韓中 兩族의 關係는 일찍이 例를 볼 수 없었던 바라 이제 그 痕迹(흔적)을 遡及하여 살펴보면 저 아득한 四千年 前 우리나라의 檀君님은 陶唐의 堯임금과 同時代에 임금님이 되시었고 그의 아들 扶婁는 夏禹와 塗山의 會議」에서 만나 두 나라의 國境을 勘定하였으니 이것이 곧 韓中 兩民族이 和結하는 첫걸음이었다.
「神檀史」라는 책에 虞나라의 舜임금이 攝政했을 때 九州 十二山을 封했다고 했는데 朝鮮국의 西쪽 政區域은 幽州와 幷州①가 모두 그 境內에 들어 있는바 朝鮮國도 使臣을 派遣하여 境界를 測量하여 幽州② 營州③의 二州를 朝鮮國의 領土로 하게 하였다고 했다.
[註 1] 옛 12州의 하나이며 帝舜有虞(BC 2255~2208)은 冀州(기주)의 東南地方 恆山의 땅을 갈라서 幷州라 했다.
卽 河北星의 舊正安⋅保定 및 山西聲의 舊大原 大同 等에 該當된다.
[註 2] 「幽州」舜虞는 冀州의 東北을 幽州라 하였다.
[註 3] 「營州」舜虞가 靑州(지금의 山東星)를 갈라 그 東北쪽을 營州라 하나 事實上 營州와 靑州는 同一한 땅이라는 說이 有力하다.
出典 : 感時漫語/省齋 李始榮 著
(駁黃炎培之 韓史觀(박황염배지 한사관))
發行日 : 1983年 4月 17日. 發行 : 一潮閣 發行者 : 韓萬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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