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필운대(弼雲臺)

마당쇠행정사 2014. 8. 3. 13:28

필운대(弼雲臺)

 

인왕산(仁王山) 오른쪽의 육각현(六角峴) 아래에 누각동(樓閣洞)이 있고 그 안에 필운대가 있는데, 곧 백사(白沙) 선생의 유지(遺址)이다. 석벽(石壁)필운대라는 세 대자(大字)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선생의 수필(手筆)이니, 선생의 자() 중에 하나가 필운이므로 대()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지금 그 시대와의 거리가 거의 300년이나 되는데도 대지(臺地)가 예전과 똑같고 탈이 없으며 석각(石刻)도 그대로 있고 패이지 않았으니, 이따금 가서 바라보면 옛일이 서글퍼지는 심정을 누를 길이 없다. 삼가 살피건대, 선묘조(宣廟朝)의 상신(相臣)인 김명원(金命元)이 상주하기를, “이모(李某 이항복(李恒福)을 이름)는 반묘(半畝)의 집도 없었으니, 신의 생각에는 권상(權相 권율(權慄)을 이름)의 집에 췌거(贅居)하였는데 그 집이 필운산의 뒤쪽 기슭에 있기 때문에 인하여 호()를 삼은 것입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믿을 만한 기록일 수 있다. 정송강(鄭松江)의 시에 이르기를, “심사는 필운산이요[心事弼雲山]”라고 하였으니, 필운은 과연 산의 이름일까? 임신년(1872, 고종9)에 부로(父老)들이 내가 백사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동장(洞長)이라 칭하고 수계(修稧)를 하기에 나 또한 기꺼이 허락하였으니, 대체로 300년 동안 처음 있는 미사(美事)였다.

 

출처 : 林下筆記 27春明逸史/橘山李裕元著

출처 : 우국충정(憂國衷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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