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철퇴 맞은 '양아치 정치'

마당쇠행정사 2012. 4. 13. 20:47

입력 : 2012.04.12 23:02 | 수정 : 2012.04.12 23:20

 

'나꼼수 지지표 날아갈라'…

민주, 막말 후보에 우물쭈물진보당은 '해적' 발언 뭉개고 경선 조작도 자기끼리 감싸…

국민에게 票 달라기 전에 유권자에 예의부터 갖춰야

 

 

김창균 논설위원

나꼼수 진행자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저질(低質) 막말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총선 일주일 전인 지난 4일이었다. 필자는 하루 이틀 새 김 후보가 사퇴하거나 민주당이 공천을 철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거 막판 바람몰이에 시동을 걸어야 할 야당 입장에선 서둘러 벗어던져야 할 악재였다. 전국 단위 선거를 여러 차례 지켜본 관전자에겐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민주당은 꿈쩍하지 않았다.

당 주변에선 "김 후보를 내쳤다간 지역구마다 나꼼수 지지자 1000표 이상이 날아간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런 민주당 심리를 읽었는지 나꼼수 진행자들은 총선 나흘 전 주말, 서울시청 앞에서 지지자 6000명을 모아놓고 위력 시위를 했다. 오픈카 위에 올라선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한 사람은 지지자들 환호에 손을 뻗어 답했다.

김 후보는 두 사람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저질 발언에) 불쾌감을 느끼셨던 분들께 사과한다"는 동영상을 올렸던 후보 진영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 후보 발언이 얼마나 표를 움직였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새누리당 선거 관계자들의 입을 빌리자면 민간인 사찰 파문으로 누적됐던 부담이 김 후보 발언 하나로 상쇄되고 남았다고 한다. 지방 표심(票心)이 크게 요동쳤고 수도권에서도 야권 후보가 1000표차 이내로 패배한 4개 지역의 승패는 반대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과반 의석 달성의 최대 공신은 민주당 김 후보라는 얘기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진영이 서울 관악을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조작했다는 파문 때도 똑같은 판단 착오를 했다. 이 대표 보좌진은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에 나이를 속여 응답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선거권이 없는 사람에게 가짜 신분증으로 투표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뉴스가 터진 것은 3월 20일 저녁이었고, 필자는 밤새 이 대표가 사퇴 결정을 내릴 것으로 봤다. 그것이 자신은 물론 야권 전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었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 의원 비서관이 선관위 홈페이지를 해킹했을 때 "비서관 혼자 했을 리가 없지"라고 단정했었다. 그랬던 이 대표가 자기 보좌진에게 책임을 떠넘길 엄두는 못 낼 것이라고 믿었다. 이 대표는 사흘을 버티다 사퇴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대표가 억울한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양 감싸고 도는 야권 분위기였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예비후보 김지윤씨가 제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부른 것은 사실 총선 쟁점으로 커질 사안이 아니었다. 김씨가 경선에서 탈락한 만큼 민주·진보 야권 연대가 김씨 발언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선을 그었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해적이라는 표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김씨를 감쌌고, 민주당은 일절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해군을 '해적'으로 보는 것이 야권 연대의 공동 인식인 것처럼 돼버렸다. 강원도 정서에 밝은 한 사람은 "선거가 시작될 때만 해도 강원도 선거구 9곳 중 새누리당 우세지역은 한 곳뿐이었다. 그러나 해적 발언으로 5 대 5가 됐고, 김용민 발언으로 새누리당 싹쓸이 구도가 됐다"고 했다.

 

야권 지지자들은 새누리당 단독 과반이라는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분위기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에 "의석 구도가 수구보수 52 대 진보개혁 48이 됐다"고 썼다.

선택한 용어를 보면 유권자들의 낮은 민도(民度)에 대한 한탄이 느껴진다. 어떤 이들은 "보수언론이 이명박 정권 심판 선거를 김용민 심판 선거로 왜곡시켰다"고 분개한다. 10년 전 이맘때 "조·중·동은 끝났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왜 이제 와서 영향력을 과대평가해 주는지 궁금하다. 우리 국민이 가짜 피리 소리에 홀려 투표장을 향할 만큼 어리석다는 뜻인가.

 

저질 막말, 해적 발언, 여론조사 조작 등은 이번 선거의 고비마다 터지며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유권자들은 그 일들을 처리하는 야권 태도에 더 자극받았다. 사람은 무례(無禮)를 접했을 때 상대가 미안해하거나 겸연쩍어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실제 그런 반응이 나오면 마음이 풀어진다. 반면 상대가 짝다리를 짚고 눈을 치켜뜨면서 "내가 잘못한 게 뭔데…"라고 한다면 극도의 불쾌감을 느낀다.

그건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정당이 국민에게 표를 달라면서 취할 태도는 아니다.

 

이번 총선서 유권자들은 야권에게 정치를 하려면 고객(顧客)을 대하는 기본 예법부터 깨치라는 교훈을 줬다. 진보니 보수니, 민족이니 체제니 하는 거창한 가치(價値) 장사는 그다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