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강제병합을 가져온 우리 내부의 책임은 없는가.
"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일어난 임오군란(1882년)이 고종의 개혁에 차질을 초래했다. 청나라와 일본이 다시 조선의 내정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지배계층의 분열이 조선의 근대화를 좌절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학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이태진 교수는 할 말이 많았다. "대학은 이제 학문 후속세대를 기르는 일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서울대 인문대 학장으로 있던 2007년 9월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AFP)을 개설해 큰 관심을 끌었다. CEO들이 괴테와 칸트를 읽고, 프랑스 시와 신화의 세계를 탐구하는 인문학 수업이다. 20주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이 스스로 '논어반'과 '동아시아 근대화 탐구반'을 꾸려 계속 모임을 이끌어나갈 만큼 인기다.
"CEO들이 인문학을 찾는 것은 지적 허영이 아니다. 기업을 경영하고 사람들을 이끌어가는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인문학은 자기를 정화하고, 객관화하고, 판단력을 키워주고, 통찰력을 길러준다"고 했다.
이태진 교수는 27일 정년퇴임식에서 함께 정년을 맞은 교수들을 대표해 퇴임사를 한다. 이 교수는 이 기회를 서울대의 역사적 뿌리 찾기에 할애할 생각이다. 1895년 개교한 '법관양성소'를 서울대의 출발로 자리매김하자는 제안이다. 고종이 세운 근대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는 일제 시대 경성법학전문학교와 해방 후 서울대 법대로 이어졌다.
이 교수는 서울대의 출발을 한말(韓末)로 끌어올리려는 이유로 "지난 100여년간 대학이 거쳐온 세월의 힘을 이해하지 못해 구성원들의 사고가 근시안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니까 생각의 깊이가 얕고, 이런저런 이념에 휘둘리고, 냄비 끓듯 달아올랐다가 식어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