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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86 역사관, 유통기한 지났다

마당쇠행정사 2009. 2. 26. 09:56

386 역사관, 유통기한 지났다
 

 "좌(左)편향 교과서 비판 못한 역사학계 책임 통감한다" 
      
내일 정년퇴임 역사학 원로 이태진 교수, 自省의 '쓴소리'

          계급사관 지닌 제자들 학교 밖으로 내보내 회한 학계 국민신뢰 잃어 걱정
          역사의 무게 느끼지 못하니 이념에 휘둘릴 수밖에… 
          김기철 기자 kichul@chosun.com 입력 : 2009.02.26 01:05 

 "1980년대에 좌(左)편향 역사관을 지닌 제자들을 학교 밖으로 내 보낸 데 대해 회한이 많다.
대학 내의 진통이 국가적인 진통으로 이어지겠구나 싶었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젊은 그들은 안타깝게도 좌파적 역사관을 받아들였다."

27일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정년퇴임 하는 이태진(李泰鎭·66·사진) 교수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짙어 보였다. 그는 작년 10월 역사 관련 학회들이 정부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 수정 방침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것과 관련, "학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 것 같아 걱정이다. 결과적으로 좌편향 교과서를 두둔한 셈이 됐다"며 "교육은 학회의 의견 수렴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진(李泰鎭·66·사진) 교수는        

조선시대 유교사회사 연구로 출발한 이태진 교수는 고종과 대한제국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의 불법성을 밝히는 굵직굵직한 연구 성과를 내놓은 국사학계의 중진이다. '고종시대의 재조명' '한국 병합의 불법성 연구'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등의 저서와 논문 170여편을 썼다. 역사학회와 진단학회,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학술원 회원이다.

―역사학계 내부에서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현대사 서술의 문제점에 대한 자성(自省)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역사학계의 책임 회피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지만…. 통일을 앞세우는 386세대의 역사관에 감히 손을 못 댄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학자의 필수적 덕목 중 하나는 균형감각인데, 왜 학계 안에서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을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지금 교수가 됐고, 역사 관련 학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사를 여전히 민중(民衆)이나 계급 중심의 좌파적 역사관으로 보고 있는 게 문제다. 이미 유효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는데…. 그들은 역사학을 너무 정치화했다. 전교조 역사관(歷史觀)이 정치화한 역사학의 대표사례이다. 학자들은 그런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 근대사에서도 민중 봉기만 뽑아내고, 대한제국의 개혁 운동은 무시한다. 학생운동 세례를 받은 386세대의 역사관은 금성사 근현대사 교과서와 가깝다."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검토해봤는가.

"금성 교과서의 현대사 서술은 교과서로서 지켜야 할 선(線)을 넘었다. 어떤 식의 통일인지는 따지지 않고, 통일만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해 전문가도 판단하기 어려운 내용을 학생들에게 스스로 판단하라고 한다. 남·북한이 2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교과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교육부에서 이 교과서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기에 문구 수정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

이 교수는 '고종 시대의 재조명' 등 저서를 통해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 노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논쟁을 주도해왔다. 고종이 추진한 중앙은행 설립 등의 개혁이 미처 성과를 거두기 전에 일본이 1904년 러·일 전쟁을 일으켜 조선의 근대화를 짓밟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종의 개혁 노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며 한 발짝 거리를 뒀다.

일본의 강제병합을 가져온 우리 내부의 책임은 없는가.

"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일어난 임오군란(1882년)이 고종의 개혁에 차질을 초래했다. 청나라와 일본이 다시 조선의 내정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지배계층의 분열이 조선의 근대화를 좌절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학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이태진 교수는 할 말이 많았다. "대학은 이제 학문 후속세대를 기르는 일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서울대 인문대 학장으로 있던 2007년 9월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AFP)을 개설해 큰 관심을 끌었다. CEO들이 괴테와 칸트를 읽고, 프랑스 시와 신화의 세계를 탐구하는 인문학 수업이다. 20주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이 스스로 '논어반'과 '동아시아 근대화 탐구반'을 꾸려 계속 모임을 이끌어나갈 만큼 인기다.

"CEO들이 인문학을 찾는 것은 지적 허영이 아니다. 기업을 경영하고 사람들을 이끌어가는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인문학은 자기를 정화하고, 객관화하고, 판단력을 키워주고, 통찰력을 길러준다"고 했다.

이태진 교수는 27일 정년퇴임식에서 함께 정년을 맞은 교수들을 대표해 퇴임사를 한다. 이 교수는 이 기회를 서울대의 역사적 뿌리 찾기에 할애할 생각이다. 1895년 개교한 '법관양성소'를 서울대의 출발로 자리매김하자는 제안이다. 고종이 세운 근대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는 일제 시대 경성법학전문학교와 해방 후 서울대 법대로 이어졌다.

이 교수는 서울대의 출발을 한말(韓末)로 끌어올리려는 이유로 "지난 100여년간 대학이 거쳐온 세월의 힘을 이해하지 못해 구성원들의 사고가 근시안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니까 생각의 깊이가 얕고, 이런저런 이념에 휘둘리고, 냄비 끓듯 달아올랐다가 식어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출처 : 대한민국 박사모 (박사모)
글쓴이 : 새로운영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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