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근언(謹言) 과 제사(祭祀)

마당쇠행정사 2014. 9. 7. 11:30

근언(謹言) 과 제사(祭祀)

                                                                                              

出典 : 임하필기(林下筆記)인일편(人日編)

 

                                                                                              

 橘山 李裕元著 (1814/純祖14-1888/高宗25)

                                                                                                   

 

  少字/六喜 字/景春 號/墨農橘山

                                                                                 

  諡號/ 文忠 / 領議政

 

근언(謹言)

회재는 옥당(玉堂)에 있으면서 동료와 서로 마주 보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말이 없었는데, 이는 지경(持敬) 공부가 깊어서이지 억지로 꾸며서 한 것은 아니었다.

 

퇴계는 논변(論辯)할 적에 기운은 온화하고 말은 유창하며, 이치는 분명하고 의리는 안정되어서 비록 여러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말을 하더라도 뒤섞여 말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저들의 말이 그치기를 기다려 천천히 한마디 말로써 조리 있게 분석하였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자신만 옳다고 하지는 않고 다만 나의 의견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만 말하였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은 평생 괴이한 언행을 싫어하였다. 고을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온종일 말하고 웃었지만 그가 괴이한 말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월천(月川) 조목(趙穆)은 조정(朝廷)의 이해와 시정(時政)의 득실에 대하여 비록 말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함께 대응하지 않았다. 한 조사(朝士)가 와서 시사(時事)를 말하였는데, 공이 말하기를, “산 속에서는 산 속의 말을 해야 한다.” 하였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말하기를,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시에, ‘세상일 거침없이 논할 필요 없으니, 산 얘기 물 얘기만 해도 할 얘기가 많다네.[捫虱何須談世事 談山談水亦多談]’ 하였고,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시에, ‘사람 만나 산속 일 얘기하기가 싫으니, 산속 일만 얘기해도 사람을 거스르네.[逢人不喜談山事 山事談來亦忤人]’ 하였는데, 뒤의 시가 더욱 고상하다.” 하였다.

 

퇴계는 친구의 허물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정색(正色)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안처함(安處諴)이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말하기를, “30세 이후에 감시(監試)를 보고 40세 이후에 동당시(東堂試)를 볼 것이니, 그 이전에는 절대로 응시하지 않겠다.” 하였다. 무인년에는 그의 나이 31세였다. 그의 아버지 정민공(貞敏公)이 사마시(司馬試)를 보라고 명하자, 대답하기를, “군자의 한마디 말은 천 년이 지나도 바꿀 수 없는 법이니, 어려서 벗과 한 말을 지금 바꿀 수 없습니다.” 하였다.

 

 

제사(祭祀)

 

퇴계가 말하기를, “기일(忌日)에 술과 음식을 마련해서 마을 사람들을 부르는 것은 예가 아니다.” 하였다.

 

청송 성수침은 묘제(墓祭)를 번갈아 제사 지내는 것이 간혹 정성스럽고 깨끗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침내 묘제법(墓祭法)을 세웠다. 묘전(墓田)과 종을 두고, 묘 아래에 집을 지어 물품을 보관하는 각()을 두고 곡식을 넣어 둘 창고를 두었으며, 음식을 마련할 부엌을 만들고 치재(致齋)할 방을 만드는 따위의 모든 설비를 다 갖추었다. 그리고 상석(床席)과 기용(器用) 등 자잘한 것까지 모두 빈틈없이 계획하였고, 장부를 만들어서 장구한 계책으로 삼았다.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은 제사에 더욱 정성을 다하였다. 제반 기용(器用)은 별도의 장소에 보관하였고, 집안 식구와 집사(執事)들은 모두 미리 목욕하고 입과 코를 베로 막은 뒤에 그릇을 닦고 음식을 마련하였으며, 우물도 미리 깨끗하게 청소하여 다른 사람들이 긷지 못하게 하였고, 술과 장류(醬類)도 따로 마련해 두었다.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부모 기일(忌日) 때마다 쌀 한 톨도 먹지 않았으며, 종일토록 눈물을 흘렸다.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는 부모의 기일이 되면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준 원령(圓領)을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치재(致齋)하였다.

 

출처 : 우국충정(憂國衷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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