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원수 갚음은 당연하다

마당쇠행정사 2009. 11. 2. 11:47

원수 갚음은 당연하다

조선시대의 과학수사(3)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조선시대에도 사형죄에 해당할 경우 기본적으로 3심 제도를 운용하는 등 인명을 중시했다. 중종 24년 9월 12일,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형옥의 일 가운데 살인공사(殺人公事)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무릇 사죄(死罪)에 해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삼복(三覆)을 하게 하는 것은 인명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목숨으로 보상함이 마땅하지만 형관은 모름지기 반복해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러나 유교 국가답게 형사사건도 인륜이 우선이었다. 황해도 수안군에서 김씨 양반 댁에 초상이 있자 동네 상여계(喪輿契) 계원들이 상여를 가지러 마을 창고로 갔는데 상여계 전ㆍ현 소임(所任)인 이노미와 정완석이 다투다가 정완석이 사망했다.
이노미는 상여에 사용되는 죽장(竹杖)이 본래 아홉 개인데 한 개가 없어져서 그 이유를 전임 계장 정완석에게 물었다. 정완석은 이미 인수인계가 끝난 일을 가지고 전임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도리어 화를 내는 바람에 서로 욕을 하다가 죽장을 들고 휘두르며 싸우는 와중에서 정완석이 사망한 것이다. 이노미는 정완석이 먼저 자신의 엉덩이를 두 차례 가격하므로 화가 나서 정완석의 머리 부위를 몇 차례 때렸는데 그만 사망했다고 실토했다.
이에 인근 동네로 시집을 간 정완석의 35살 난 딸이 친정으로 돌아와 70살 된 노인인 아버지를 죽인 이노미를 몽둥이로 때려 살해하였다. 이 사건을 조사한 수안군수는 다음과 같이 보고를 올렸다.

‘정 여인이 인명(人命)을 타살(打殺)한 것은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대전통편(大典通編)』의 살옥(殺獄) 조항에 ‘그 아비가 구타당해 중상을 입은 경우 아들이 그 사람을 죽일 때는 사형을 면해 유배에 처한다(減死定配)’고 하였고, 또 ‘아비가 살해된 경우 관의 조사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원수를 마음대로 죽인 경우에도 감사정배(減死定配)한다’고 하였으므로 정 여인을 율문(律文)에 따라 유배함이 마땅할 듯하다.‘

당대에 살인의 경우 대부분 사형으로 판결했다. 그런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죽인 정여인은 원수를 죽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유배형에 처하자고 건의했다. 그런데 수안군수의 보고를 받은 황해도 관찰사는 보다 놀라운 판결을 내린다.

‘살옥(殺獄)의 죄 값은 반드시 정범을 확정한 후에 처리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다. 정완석이 맞은 후 금방 사망하였고, 귀 부위가 급소인 데다가 여러 사람의 증언을 참고하면 칠십 노인을 가격한 흉한(兇漢)이 이노미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정씨 부인의 복수는 천리(天理)에 따름이니 형틀을 채우거나 고문하지 말 것이다. 만일 사람을 죽인 자는 역시 죽여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정씨 부인은 법전(法典)에 의거해 특별히 사면하고, 두 구의 시신은 모두 가족에게 내주어 매장하도록 할 것이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것이 조선 시대 사람들의 윤리의식이었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한 복수라면 비록 살인이라도 용서됐다. 다만 공권력(公權力)에 의한 처리를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살인한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하지 아니하고 형을 줄여 유배형을 내렸다.
그런데 정씨 부인처럼 여자의 몸으로 원수를 때려 죽였다는 것은 오히려 상을 받을 일로 생각했다. 이는 효녀나 장부(壯婦)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씨 부인은 유배형도 면한 채 '사면(赦免)'을 받은 것으로 당시의 관습에 따라 인정과 도리에 의한 행동은 여러 면에서 구제를 받았다.
정약용이 저술한 『흠흠신서(欽欽新書)』 「상형추의(詳刑追議)」의 <형벌을 신중하게 적용하기 위해 덧붙인 논의>에서 원수 갚음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선왕(先王)의 제도에 어긋나고, 원수 갚음을 허용한다면 사람들은 법에 의하여 함부로 죽일 것이라는 선유(先儒)의 말이 있음을 적었다. 그러면서도 정약용은 <원수 갚음에 대한 용서>, <인정과 도리에 대한 용서>, <의로운 기개에 대한 용서> 등을 통해 정상을 참작해야 함을 강조했다.
영월 백성 박내린이 박성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박성대는 박내린의 아버지를 죽인데다 그 조상 무덤에 불을 질렀으며 무례한 말을 수없이 퍼부은 장본인이었다. 이에 박내린은 항상 칼을 지니고 다니다 원수인 박성대를 만나자마자 찔러 죽였다. 박성대는 자신의 죄로 박내린의 아버지가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도망친 후 박내린에게 화해의 손길을 보냈으나 박내린은 이를 완강히 거절한 후 박성대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박내린은 박성대를 죽인 후에도 즉시 관아에 알리지 않았다. 소위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공권력에 도전하였음에도 정약용은 살해당한 박성대의 범행과 죄상이 워낙 나쁜데다 박내린이 원수를 갚으려고 기회를 엿보았다는 것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므로 박내린에게 정상을 참작하여 사형을 면하고 유배시키라는 판결이 내리자 박내린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죽인 것이므로 유배가 아니라 태장 60대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붓아들이 아버지를 구타하자 친아들이 의붓아들을 죽인 사건도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황해도 봉산에서 박봉손이 의붓아들 배종남을 죽였다. 사건의 원인은 배종남이 박봉손의 의붓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재산(쌀 한 섬)을 주는 것에 인색하자 의붓아버지를 움켜잡고 때리고 욕을 하여 가슴을 다치게 했는데 친아들인 박봉손이 이를 보고 배종남을 때리고 걷어차다 사망한 것이다.
당시의 기록에는 박봉선은 친아들이고 배종남은 의붓아들이지만 부자의 의리는 같은데도 불구하고 한 섬의 곡식으로 하여 욕질을 하고 함부로 범행하여 가슴을 다치게 했으므로 비록 길을 가던 사람이라도 마땅히 팔을 걷어붙이고 분풀이를 했을 것으로 적었다. 하물며 친아들이 이 상황을 목격하고 용감히 달려들어 가로막고 힘을 다하여 때리고 차다가 사망까지 이르게 했으니 이는 자연의 도리와 인간의 정리로 볼 때 당연하다고 했다.
당대에는 의붓아버지를 때린 자는 형장 60에 징역 1년이고 뼈가 부러지거나 접 찔린 부상 이상인 경우에는 싸우다가 다친 죄에 한 등급을 더하고 같이 사는 경우에는 한 등급을 더하며, 죽기에 이른 경우에는 참형으로 다스렸다.
그러므로 의붓아버지를 때리려는 사람을 보고 남들도 때리려 할 것임을 고려하여 친아들인 박봉손이 의붓아들을 살해하였지만 죄를 줄 수는 없다며 석방했다.
한편 재령의 이후상이 어머니 방소사(方召史)를 위해 공소사(孔召史)를 살해했는데 이 경우에는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유배시켰다. 이는 박봉선의 경우와 형질이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상의 어머니 방소사와 이후상에게 살해당한 공소사는 10촌 동서간이다. 그런데 나이가 7살이나 적은 공소사가 방소사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뺨을 때리자 이후상이 화가 나 공소사를 주먹과 발로 찼는데 사망한 것이다.
당시에 부모가 남에게 맞아 무거운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아들이 그 사람을 때려 죽게 한 자는 사형에서 줄여 유배시킨다는 점에서는 박봉손과 같이 취급할 수는 있지만 배종남은 의붓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의붓아버지를 때렸다는 것을 더욱 큰 죄로 보았으므로 형량에도 차이가 났다. 부모를 때리려는 사람을 구타하여 살인한 것은 동일하지만 박봉손은 방면되고 이후상은 3년 징역에 유배시킨 것이다.
부모를 살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는 중종 35년(1540)에 일어난 사건 처리 결과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원주의 사노비 유석이 맹인 아버지를 물 속에 집어넣고 몽둥이로 머리를 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자 중종은 그를 처형하는 것은 물론 그가 사는 고을의 읍호까지 강등시키라고 지시했다.  끝.

- 참고문헌 -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창권, 문학동네, 2005
「아버지 죽인 원수 죽이자 특별사면」, 김호, 한국일보, 2003.12.15
『역주흠흠신서』, 정약용, 현대실학서, 1999 


이종호 박사는 고대 건축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프랑스 문부성 주최 우수 논문 제출상을 수상했으며, 해외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IST) 등에서 겸임교수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학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이종호 박사는 우리 유산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대중들에게 알리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번에 시리즈로 싣게 된 ‘조선시대의 과학수사’ 역시 이려한 그의 노력의 한 부문을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풀어놓은 것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현대과학으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피라미드 과학」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