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

[스크랩] 경전화시편(瓊田花市編)

마당쇠행정사 2014. 4. 26. 10:53


경전화시편(瓊田花市編)

 

                                            出典 : 林下筆記 (橘山 李裕元 著)

 

1. [경전화시편(瓊田花市編) ()]

옛날의 작문가(作文家)는 한()() 시대에 발생하여 당()()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는데, 그것을 가름하는 인물은 한 문공(韓文公)이다.

이 글은 그 연원(淵源)을 거슬러 올라가서 얻은 것을 그때마다 기록한 것이다.

시문(詩文)에 관한 법은 한 번 살펴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므로, 마치 경전(瓊田)에 때맞추어 비가 내리면 모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과 같다 하겠다.

그래서 이것을 편명(編名)으로 삼았다.

 

 

[D-001]이 글은 …… 것이다 : 얻은 것을 수시로 기록했다는 말은 저자가 보고 터득한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본 것을 그대로 적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수록한 글은 명()나라 학자인 서사증(徐師曾)이 편찬한 문체명변(文體明辨)의 전체 내용 중에서 원문은 생략하고 서론(序論)에 해당하는 부분만 요약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2. 고 가요사(古 歌謠辭)

가요(歌謠)란 조정과 초야에서 읊거나 노래하는 말이다. 광아(廣雅)에 이르기를, “소리를

거문고나 비파에 맞추는 것을 가()라고 한다.” 하였고,

이아(爾雅)에 이르기를, “악기 없이 노래만 하는 것을 요()라 한다.” 하였으며,

한시장구(韓詩章句)에 이르기를, “악장(樂章)과 곡조(曲調)가 있으면 가()라고 하고,

악장과 곡조가 없으면 요()라고 한다.” 하였으니,

는 오래전부터 구분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상고 시대를 고찰해 보건대, 경운(卿雲)채미(采薇)를 모두 라고만 하고,

격양(擊壤)이나 고각(叩角)도 모두 라고만 하여 전부 거문고나 비파에 맞추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를 통칭(通稱)했다는 명확한 증거라 할 수 있겠다.
공자는 민속 가요(民俗歌謠)의 노랫말을 두루 채집하여 15개의 국풍(國風)을 만들었다.

옛날의 시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것을 통틀어 시()라고 하였다.

분야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도 있고, ()도 있고, ()도 있고, ()도 있고, ()도 있고, ()

 있으니,

격양가(擊壤歌), 강구요(康衢謠), 축자구(築者謳), 주유송(朱儒誦), 남풍시(南風詩),

석오사(射烏辭) 등을 일례로 들 수 있겠다.

 

 

[C-001]고가요사(古歌謠辭) : 이 대목은 문체명변(文體明辨)1 고가요사(古歌謠辭)

 개론을 저자가 요약하여 옮긴 것이다.
[D-001]경운(卿雲) : () 임금이 우() 임금에게 선위(禪位)하기에 앞서 팔백(八伯)

 함께 화답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한다.

모두 3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은 순 임금이 부르고 2장은 팔백이 화답하고 3장은 다시 순 임금이

노래를 불러 우 임금에게 선위할 뜻을 제시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文體明辨 卷1 古歌謠辭
[D-002]채미(采薇) : 148구로 이루어진 이 노래의 저자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이다.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무력으로 차지하자,

이들은 신하로서 임금을 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고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여생을 마쳤는데, 이때 지은 작품이다.文體明辨 卷1 古歌謠辭
[D-003]격양(擊壤) : () 임금 당시에 천하가 태평스러워지자, 백성들이 편안한 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에 어떤 노인이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한다.文體明辨 卷1 古歌謠辭
[D-004]고각(叩角) : 소의 뿔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반우가(飯牛歌)라고도

한다.

()나라 사람인 영척(甯戚)이 제 환공(齊桓公)에게 벼슬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기르던 소를

몰고 가 제 환공의 수레 밑에서 소의 뿔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불렀다 한다. 모두 3수이다.

晉書 卷51 皇甫謐列傳
[D-005]강구요(康衢謠) : 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 만에 천하가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미복(微服) 차림으로 강국 땅에 갔을 때 어린아이가 불렀다는 동요가 바로

 이 노래이다.文體明辨 卷1 古歌謠辭
[D-006]축자구(築者謳) : 송나라 황국보(皇國父)가 태재(太宰)가 된 평공(平公)을 위하여

누대(樓臺)를 축조하려 하자, 농사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자한(子罕)이 농한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청하였지만 공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축조를 맡았던 자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한다.文體明辨 卷1 古歌謠辭
[D-007]주유송(朱儒誦) : ()나라가 거()나라와 함께 증()나라를 공격하자,

()나라 대부인 장흘(臧紇)이 증나라를 구해 주기 위하여 주나라를 공격하였다가

호태(狐駘)라는 지역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때 노나라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한다.春秋左傳 襄公4
[D-008]남풍시(南風詩) : 공자가어(孔子家語), “우순(虞舜)이 오현(五絃)으로 된

거문고를 타고 남풍(南風)이란 시를 지어 불렀다.” 하였다.文體明辨 卷1 古歌謠辭
[D-009]석오사(射烏辭) : ()나라 명제(明帝)가 동쪽으로 순행을 나갔는데 까마귀가

 타고 가는 수레 위에서 울자, 호분랑(虎賁郞)이 활을 쏘아 그 까마귀를 잡고 이 글을 지어 올렸다.

이에 명제가 돈 백만을 하사하고 정자의 벽에다 모두 까마귀를 그리도록 하였다 한다.

文體明辨 卷1 古歌謠辭

 

 

3. 사언 고시(四言古詩)

()란 뜻이 가는 바를 읊은 것이다. 마음속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되는데,

시가 육정(六情)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정()에서 우러나와 예()와 의()에서 멈추게 된다.

()나라 위맹(韋孟)이 맨 처음 장편(長篇)을 지으면서 고시(古詩)의 체재(體裁)가 조금

변화되었다.

그 정체(正體)로 말하면 양()나라 유협(劉勰)이 이른바 단아하고 윤택한 맛이 있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삼언시(三言詩)에 대해서는, ()나라 임방(任昉)은 진()나라 하후담(夏侯湛)

지었다고 하지만,

()나라 악부시(樂府詩)연시일(練時日)천마(天馬) 등의 노래가 모두 삼언(三言)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하후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은 옳지 않다.

 

 

[C-001]사언 고시(四言古詩) : 이 대목은 문체명변1 사언 고시(四言古詩)의 개론을

 저자가 요약하여 옮긴 것이다.
[D-001]위맹(韋孟)…… 지으면서 : 위맹은 노()나라 추() 땅 사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편이란, 그가 초 원왕(楚元王)의 손자인 유무(劉戊)의 사부가 되었을 때

그가 도의(道義)를 준수하지 않고 무질서한 생활을 하므로 이 점을 풍간하기 위하여 지은 98구의

 장편시를 말한다.古詩賞析 卷3 漢詩
[D-002]연시일(練時日) : 이 시는 작자 미상의 교묘가사(郊廟歌辭)로 전체 19장으로 되어

 있으며, 중신(衆神)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제물을 갖추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古詩賞析 卷4 漢詩
[D-003]천마(天馬) : 이 시는 모두 두 수로 되어 있는데, 첫째 수 6()은 한 무제(漢武帝)

 원정(元鼎) 4년에 섬서(陝西)의 악와(渥洼)라는 물에서 말이 출생한 것을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하고,

둘째 수 13운은 태초(太初) 4년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대완왕(大宛王)

참수하고 한혈마(汗血馬)를 얻어 가지고 와서 지었다고 하나, 작자가 확실하지 않다.

古詩賞析 卷4 漢詩

 

 

4. 초사(楚辭)

초사(楚辭)는 시()가 변한 것이다. 시경(詩經)에 초풍(楚風)은 없지만 강한(江漢) 지역이

 모두 초나라 땅이었다.

문왕(文王)의 교화가 남국(南國)에 시행되면서 한광(漢廣), 강유사(江有汜)와 같은 시를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에 나열하였으니, 이는 시경에 비록 초풍은 없지만 실제로

()의 시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과 아()가 없어지고 나서 이내 초나라 광인(狂人) 접여(接輿)봉이여 봉이여

[鳳兮鳳兮]’로 시작되는 노래어떤 동자(童子)창랑의 물이 맑거든[滄浪之水淸兮]’

으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었으니,

이들은 시인(詩人)육의(六義)와 서로 그다지 멀지 않다. 다만 그 내용이 시의 본체를 다소

변화시킨 면은 있지만 ()’ 자에 착안해 읽어 보면 대체로 초성(楚聲)이 여기에서

태동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굴평(屈平)이 시의(詩義)를 근간으로 하여 이소경(離騷經)을 지었으므로 대체로 육의를

겸하였으나 부()의 문체가 대부분이다.

그 뒤에 송옥(宋玉)이 이어서 지었다. 그러므로 송나라 송기(宋祁)가 이르기를,

이소경은 사()와 부()의 원조이다.” 하였다.

 

 

[C-001]초사(楚辭) : 이 대목은 문체명변1 초사 상(楚辭上)의 개론을 저자가

 간추려서 옮긴 것이다.


[D-001]한광(漢廣) : 전체 324구로 되어 있는 이 시는, 문왕(文王)의 덕화(德化)

 강한(江漢) 지역까지 미쳐서 음란한 풍습이 바뀜에 따라 나와서 노는 여인들이 옛날과는

달리 단정하고 정숙한 태도를 갖자,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읊은 것이라 한다.詩經 周南 漢廣


[D-002]강유사(江有汜) : 전체 315구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잉첩(媵妾)이 자신을 두고 간

 적처(嫡妻)에 대하여 읊은 것인데, 적처가 지금은 자신을 두고 갔지만 훗날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詩經 召南 江有汜

[D-003]초나라 …… 노래 : 논어(論語)미자(微子)에 보인다.


[D-004]어떤 …… 노래 : 맹자(孟子)이루 상(離婁上)에 보인다.


[D-005]육의(六義) : ()의 풍(), (), (), (), (), ()

여섯 가지 체()를 말한다.

 

                                                            

                                                                                                                   <原任 成均館 副館長 友山 李相吉>

 

 

출처 : 우국충정(憂國衷情)
글쓴이 : 마당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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