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 네거리에 있는 청춘극장. 한 노신사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흘러간 가요 ‘추억의 소야곡’을 열창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4일 이곳에서 열린 ‘2010 청춘가요제’에서 대상을 탄 홍순춘 어르신(84 ·서울시 구로구)이었다.
그는 이날 열린 희망가요제에서 명국환씨 등 원로가수 뒤를 이어 노래를 불렀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남여 관객들 또한 노래 부르는 노신사만큼이나 나이가 지긋했다. 이들은 노랫가락에 맞춰 손뼉을 치고 함께 따라 불렀다.
| ‘청춘가요제’ 대상 수상자 홍순춘씨가 1월 1일 희망가요제에서 대상수상곡 '추억의 소야곡'을 열창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어르신전용문화공간 ‘청춘극장’
이 곳은 서울시가 마련한 서울형 어르신전용문화공간인 ‘실버전용극장’이다. 서울시에선 옛 화양극장을 대관해 지난해 10월 2일 이곳을 개관했다. 600석 규모 시설로 영화를 상영하거나 공연을 할 수도 있다. 어르신전용영화관으론 서울시 종로구에 허리우드극장이 있지만,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마련한 어르신전용문화공간은 이곳이 처음이다.
청춘극장 이용대상은 55세 이상 어르신과 동반 가족이다. 입장료 2000원으로 하루 종일 모든 영화와 공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저소득층 노인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매주 일요일은 휴관한다.
이곳을 개관한 서울시 문화정책과 김남욱 담당자는 “어르신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늘리고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지난해 노인의 날에 개관했다”며 “개관한 지 2개월밖에 안됐지만 하루 평균 관객수가 350명에 달할 정도로 어르신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어르신 취향에 맞춘 공연, 문화강좌를 실시하고 치매·취업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팝콘 및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인근 음식점 할인 혜택을 드리는 등 이곳을 어르신 종합문화공간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선 입장객에겐 팝콘과 커피, 녹차 등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매일 선착순 150명에겐 우리은행의 협찬을 받아 빵 2개를 제공한다. 사회복지사가 상주하면서 매주 월요일에는 취업상담을, 화요일에는 연극 및 웃음치료프로그램을, 수요일엔 치매상담을, 목요일에는 역사·마술·노래교실과 포크댄스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청춘극장에선 많은 어르신들이 일하고 있다. |
운영직원도 55세 이상 어르신들이 많아
특히 서울시에선 이곳에서 노인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입장권 발매, 음료 서빙, 공연장 안내 등 운영 직원 26명중 21명이 55세 이상 어르신이라고 한다. 전체 직원의 80%에 달한다. 이들의 임금은 서울시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한 달 평균 30~40만여 원씩 받는다.
팝콘을 튀기고 어르신들에게 음료와 팝콘을 내주던 백봉현 어르신(73·서울시 서대문구)은 “교직에서 은퇴한 뒤 숲 해설가로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활동해왔다”며 “겨울엔 늘 하는 일없이 지냈는데 올겨울엔 이곳에 매일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백 어르신은 “바깥공기를 쐬며 활동하니 오히려 건강에 더 좋고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것 같아 무척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빈자리나면 연락해달라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희망가요제 공연 시작 전, 로비에는 친구를 기다리는 어르신, 삼삼오오 친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 어르신 등 많은 어르신들로 북적거렸다.
친구 2명과 함께 영화를 보러 왔다는 황복임 어르신(82·여·서울시 마포구)은 “카사블랑카, 닥터지바고 등 옛날 영화를 보러 일주일에 한 번씩 온다”며 “젊을 때 추억에도 젖을 수 있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 노인들이라 시내 어느 곳보다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던 박종열 어르신(75·서울시 성동구)은 “겨울에 갈 데가 없는 노인을 위해 이런 시설이 생긴 건 좋은데 자주 오다보니 몇 가지 건의사항이 생겼다”며 “식사대용으로 빵이나 분식류를 판매하면 좋겠고 안에서 하는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로비에도 커다란 TV를 설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서울시 서대문구 네거리에 있는 어르신전용문화공간인 청춘극장. 55세 이상 어르신은 입장료 2000원으로 하루 종일 영화와 공연을 볼 수 있다. |
“ 예산 확보하면 동서남북에 하나씩 만들 것”
입장권을 발매하던 박연순씨(54·여)는 “분당, 수원, 평택 등 서울 인근에서 매일 오시는 분도 계신다”며 “점점 소문이 퍼져 날이 갈수록 이용객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서울시 문화정책과 김남욱 담당자는 “내년에 예산을 확보하면 서울시 동, 서, 남, 북 권역별로 하나씩 이 같은 어르신전용문화공간을 설치할 계획이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코엑스나 명동거리처럼 화려한 조명이나 시설은 없었지만 어르신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문화공간이었다. 음료를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비슷한 연령대 어르신들이라 이곳에서 어르신들은 더없이 푸근하고 따뜻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문화공간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 생겼으면 한다.
청춘극장 공연문의 070-4222-8869
정책기자 박경숙(주부) 5213651@hanmail.net